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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과학적 근거 없는 ‘기후대응댐’…“피해만 주는데 누굴 위해 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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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댐 건설 후보지 14곳 발표 이후…양구군 가보니

경향신문

강원 양구군 방산면에 수입천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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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관광지 두타연 훼손 우려
산양 등 천연기념물에 악영향
주민들 “터전서 내몰릴 위기”
지역 곳곳 ‘건설 반대’ 현수막

“홍수 막기에는 댐 규모 작아”
전문가, ‘실효성 미흡’ 지적도

“부모님 때부터 살아온 터전인데 댐이 생긴다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마을 사람들 모두 아무 정보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어요.”

지난달 30일 환경부가 댐 건설 후보지 14곳을 발표한 이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댐 건설 후보지로 발표된 일부 지역에서는 ‘생존권 투쟁’ 수준의 거센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반대 운동이 가시화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환경부의 보상안을 기다리며 불편한 침묵 속에 갈등의 싹이 움트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댐의 필요성이나 효용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댐 건설을 추진하면서 예산 낭비는 물론 막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소모될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 8일 찾아간 강원 양구군에서 만난 군청 관계자, 주민 등은 환경부의 양구 수입천댐 추진에 대해 “분노가 치미는 처사”라고 입을 모았다. 수입천댐이 건설될 경우 수몰되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민들도 댐 건설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지역엔 소양강댐·화천댐·평화의댐 등 3개 댐으로 인해 터전을 잃거나 피해를 겪어온 주민들이 이미 많은 탓이다. 한 주민은 “아버지 때부터 60년째 수입천 주변에 터를 내리고 살았고, 나도 새로 집을 짓고 살 생각이었는데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양구군은 주민 피해 문제뿐 아니라 생태적인 가치가 높고, 안보관광지로도 유명한 두타연을 수몰시키려는 환경부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구군 관계자는 “홍수 방어나 용수 공급 등 댐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상태에서 양구군 내에서도 중요한 관광지를 수몰시키고 주민 피해만 만드는 댐을 추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두타연은 양구군 외부에서 다수의 관광객이 민통선 내 절경을 보러 찾아오는 곳이다. 현장을 찾은 이날도 맑은 물이 바위틈을 지나 힘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민통선 내에 있어 보존이 잘돼 오염되지 않은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열목어와 어름치,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사향노루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향신문

이 절경…사라지나 환경부가 지난달 30일 댐 건설 후보지로 발표한 지역 곳곳에서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주민 피해와 환경 파괴가 우려되는 지역들이다. 정부의 댐 건설 추진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강원 양구군 수입천 일대(위쪽 사진)와 수입천의 민통선 내 절경지 두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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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두타연 관광지 주차장 인근에서는 산양이 멀찍이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목격됐다.

함께 두타연을 찾은 차종식 양구군 환경과장은 “양구에서는 매년 두타연 주변에서 지역 축제를 연다”며 “주변 댐들로 인해 고향을 잃거나 고통을 겪어온 양구군민들은 두타연을 지역의 상징으로 여기며 소중히 하고 있다”고 했다. 두타연이 수몰되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양구군 안팎에는 지역 내 각종 직능 단체, 주민 단체 등이 붙인 댐 건설 반대 현수막으로 덮여 있었다.

환경부는 두타연 바로 하류에 댐을 만들어 두타연이 수몰되는 안, 또는 4㎞ 하류에 댐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주민들은 수몰되는 지역의 넓이만 다를 뿐 댐에 둘러싸여 고립되는 것이나 댐으로 인한 피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곳에 짓든 두타연 풍광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천연기념물들이 돌이키기 어려운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도 다르지 않다.

댐 건설로 인한 주민들의 반발과 갈등은 양구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댐 건설 후보지로 거론된 충남 청양의 지천과 충북 단양 단양천, 경북 예천 용두천, 전남 화순 동복천 등에서도 주민과 지자체 등이 반대하고 있다. 양구 수입천과 단양 단양천 등은 지자체가 환경부에 댐 건설 건의를 하지 않은 곳이다.

양구 수입천의 경우 홍수가 난 적도 없고, 용수 부족을 겪은 적도 없는 곳에 왜 댐을 만들려 하냐며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입천댐이 만들어지면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공급이 유력한 용도인데, 주민들은 수도권을 위해 양구군이 희생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수입천댐을 만들어 담수하더라도 북한 측에서 물길을 바꿔버리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강원특별자치도 시군의회 의장들은 지난 23일 양구 수입천댐 건설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고, 같은 날 청양군의회는 ‘지천 다목적댐 건설 반대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청양 지역 주민들은 댐 건설에 찬성하고 있는 김태흠 충남지사의 청양 방문 일정에 맞춰 청양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댐 건설 반대 집회를 열 예정이다. 단양군민들은 오는 30일 단양중앙공원에서 ‘단양천댐 반대 궐기대회’를 열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댐 건설의 필요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환경부가 내세운 ‘기후대응댐’이라는 표현 자체가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댐 건설 필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댐 건설에 대한 용역조차 실시되지 않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기 전 정부가 실시하는 기초적 비용편익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상헌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댐으로 인해 생성된 저수지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생성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주댐의 최근 상황은 참담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낙동강에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지만 곤죽이 될 정도로 녹조가 심각하게 퍼졌고, 조류 대발생 수준인 남조류 세포 수 100만셀을 훌쩍 넘겨 190만셀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환경부가 주장하는 대로 기후대응댐으로 홍수 방어 능력을 갖추기엔 해당 댐들 모두 규모가 작다는 평가가 나온다. 용수 공급 측면에서도 해당 지역에는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댐 자체가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요소가 되고 잠재적으로 지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홍수 방어나 가뭄 대비를 위해선 기존의 댐·보 등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하천의 물이 범람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자연기반 해법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댐 건설은 이에 반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양구 | 글·사진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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