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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높은 가계부채·부동산 가격 늪 성찰 부족" 이창용이 날린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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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금리인하 압박에 "왜 가계부채 늪 빠졌나" 작심 발언

"단기 정책결정 제약됐다" 언급도…한은 10월까지 신중론 이어갈듯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4.8.22/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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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많은 분이 (이달 기준금리 결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다. 그러나 왜 우리가 지금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 성찰은 부족해 보여 안타깝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정치권에 사실상 '한 방'을 먹였다. 어려워진 내수 경기 상황을 근거로 인하 의견을 낼 순 있지만, 인하 이후 재발 우려가 농후한 가계부채와 집값 문제에 대해 근본 해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시장에 10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확산한 가운데 정작 한은의 신중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28일 한은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정치권, 학계 등의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 응수하는 성격의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지난 2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13회 연속 동결한 결정과 관련해 "금리 인하가 너무 늦어질 경우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길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통위 결정이 옳았는지 갑론을박도 있었으나, 안타까운 점은 이 논쟁이 왜 우리가 지금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기준금리 인하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을 부채질할 공산이 큼에도 금리를 내리는 편이 옳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지난 20년 동안 반복된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박' 격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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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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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와 한은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가격 변동이 극심한 배경에는 한국 특유의 치열한 입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총재는 사교육이 중요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서울, 특히 강남 지역에 대한 초과 수요가 항시 존재하게 됐다면서 "이런 가운데 아무리 보유세나 다른 정책 수단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집주인은 전셋값을 인상하면 그만이니 해결이 쉽잖다"며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공고한 가운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가계부채와 집값 문제는 재발할 공산이 크단 점이다.

이 총재는 "구조적인 제약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재정 정책을 시행하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처럼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금통위 결정은 한 번쯤은 이런 악순환 고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번 정부가 지난 20년 추세를 처음으로 바꿔주는 정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밝혔다.

당장에 금리 인하가 내수 부진이라는 경제적 고통을 해결할 진통제, 즉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가계 빚, 집값 구조조정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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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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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 총재는 한은 연구진이 같은 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대학 입시 개혁 방안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다. 이는 상위권 대학, 소위 'SKY대'의 입학 정원 대부분을 지역 인구에 일정 수준 비례하도록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통화 당국인 중앙은행이 관할 영역과 거리가 먼 교육 분야에서 개혁안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한은 내부에서조차 전문 영역 외 분야를 다루는 데 대한 우려가 크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교육, 그것도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입시 제도를 건드리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를 무릅쓰고 한은이 입을 연 것은 정치권 등에서 이어지는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 방어할 명분을 쌓으려는 목적도 있다.

한은은 정치권력을 갖지 않은 '학자 집단'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만큼 여론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경제적 논리를 갖춰야 정책 결단을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총재는 "한은이 장기 구조개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문제가 단기적인 통화정책 결정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구조적 문제들이 수십 년 누증되면서 이제는 통화·재정정책 등 단기 거시정책 선택을 제약한다"고 꼬집었다.

한은 금통위는 9월을 건너뛰고 오는 10월 11일 차기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연다. 많은 전문가는 이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3.25%로 0.25%포인트 인하될 걸로 보지만, 일각에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근거로 11월 회의로 공을 넘길 거란 관측도 내놓는다.

이 고위 관계자는 "금통위가 가계대출 향방을 정확히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물론 차기 회의까지 석 달 남은 만큼 그 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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