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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중년 여성으로 혼자 사는 일, 자신감을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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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 ‘파문’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가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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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과 ‘안경’의 느긋하고 따사로운 분위기를 빚어낸 그 감독 영화가 맞나 싶다. 28일 폐막하는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파문’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인의 마음에 난 금과 중년 여성의 불안이 날카롭게 묘사된 작품이다.



“‘카모메 식당’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내가 요리도 잘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저 요리하기 엄청 싫어합니다.(웃음) 부정적이고 우왕좌왕하는, 성격도 별로인 사람이에요. 또 ‘카모메 식당’을 만든 뒤 17년이 지나면서 인생도 변하고 그에 따라 작품도 변했죠. ‘파문’은 중년에 이른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을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동일본대지진 직후 갑자기 남편이 가출한다. 전업주부로 아들을 키우며 병든 시아버지까지 건사하던 요리코(츠츠이 마리코)는 동네 슈퍼에서 일하고 신흥 종교에 몰두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시아버지와 아들도 떠나고 홀로 살아가던 어느 날 암에 걸린 남편이 돌아와 고요하던 삶에 파문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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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파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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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감독은 도쿄 집 근처 신흥 종교 시설을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들이 이 시설에 출입하는 걸 봤어요. 영화 일 하랴, 쌍둥이 키우랴 늘 바빴던 저는 ‘무슨 고민이 있길래 저런 곳엘 갈까? 한가한 사람들인가?’ 무심코 생각했는데, 어느 비 오던 날 우산꽂이에 엄청나게 많은 우산이 꽂힌 걸 봤어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의지하는 구나 싶어 소름이 돋았죠.”



요리코가 빠져든 ‘녹명회’는 특별한 물로 영혼을 정화하는 종교다. 감독이 집중한 건 이른바 비합리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신흥 종교 비판이 아니라 이런 데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이다. 동일본대지진과 이로 인한 방사능 오염수는 마음 깊은 곳에 잠겨있던 불안을 발화시키는 계기로 기능한다. “지진이 일어난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저는 아직도 수돗물을 먹이지 않아요. 방사능 걱정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오염 위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주지 않고 은폐하기 급급하니 그럴 수밖에 없죠.” 수돗물에 대한 불안, 생수 사재기 등이 맑은 물을 숭배하는 신흥 종교의 모습으로 영화에 은유된다.



한겨레

영화 ‘파문’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가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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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안을 관통하는 ‘파문’의 메시지는 중년 여성의 독립이다. 오기가미 감독은 “일본에서 여성으로 사는 건 숨 막히는 일”이라면서 “차별이나 성폭력을 고발하면 피해 여성이 비판받기도 하는 등 여성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아직 미약한 수준”이라고 했다. 영화에서 마트 청소일을 하며 혼자 사는 동료만이 요리코에게 무책임한 남편을 받아주지 말고 복수하라고 일갈한다. 이 장면에서 수영장 사우나에 함께 있던 남성들이 조용히 나가는 모습이 폭소를 자아낸다. 아픈 동료의 지저분한 집 청소를 해주며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감을 얻는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살림이나 청소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여성들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감을 독려하고 싶어서 밝은 분위기로 끝냈죠.”



한국에 자주 왔지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참석은 처음이라는 그는 “(개막식) 뒤풀이에서 한국 여성들의 늠름한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다”며 “일본은 10년, 20년이 지나도 어려울 거 같긴 하지만(웃음), ‘파문’ 같은 영화를 통해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길 바란다”는 기대를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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