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4 (토)

공기업·기관 ‘빚더미’… 2025년 예산 다 쏟아부어도 못 갚는다 [심층기획-尹정부 재정건전성 확보 ‘빨간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23년 기준 부채규모 무려 709조원

전년대비 38조 불어나 또 역대최고치

부채비율도 2022년 이후 가파른 상승

한전 543% … 가스공사도 482% 달해

공공요금 관련 기관 부채 급증세 심각

전문가 “요금통제 등 영업이익에 타격”

LH 등 향후 지출 증가 요인 많아 부담

건전재정 고삐 쥐고 혁신 박차 가해야

2022년 600조원대였던 공공기관 부채가 불과 1년 만인 지난해 700조원을 넘어서 ‘재정 경고등’이 깜빡였다. 작년 기준으로 2025년 예산안 677조원을 다 투입해도 못 갚을 공공기관 빚은 지금도 늘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정책 우선순위로 내세운 ‘재정 건전성 확보’ 보루(堡壘)가 공공기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다시 한 번 건전재정 기조에 고삐를 쥐고 공공기관 재무 혁신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8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공공기관(324개, 산업·수출입·기업은행 제외)의 부채 규모는 709조원으로 전년 대비 38조1000억원(5.68%) 증가했다. 2021년(584조3000억원)까지 500조원대였던 총부채는 2022년(670조9000억원) 600조원대로 뛰었고 바로 한 해 뒤인 지난해 700조원을 돌파했다.

부채비율도 최근 들어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공공기관 부채비율은 2019년 161.5%에서 2020년(155.5%)과 2021년(154.8%)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상황이 악화하며 2022년 177.9%로 급등했다. 비(非)에너지 공기업 중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기 신도시 주택 건설 등으로 부채비율이 전년 대비 5.1%포인트 오른 183.0%를 기록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채비율, 文정부 땐 줄었는데 尹정부는 늘어

이런 흐름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시절과 비교해도 부채비율 오름세가 너무 가파르다. 문재인정부 집권 2년 차인 2018년 당시 공공기관(336개) 기준 부채비율은 154.8%로, 취임 직전 해인 2016년(167.1%)과 비교해 12.3%포인트 줄었다.

이와 달리 이번 정부는 취임 전인 2021년 154.8%에서 지난해 183.0%로 28.2%포인트 뛰었다. 매년 공공기관을 지정·해제하는 탓에 수치 자체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변동 폭만 놓고 봤을 때 이번 정부에서 공공기관 건전성 악화가 심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 분석 결과 한전, 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주요 공공요금 관련 5개 기관의 지난해 기준 부채 총액은 320조2671억원으로, 공공기관 총부채의 45.2%를 차지한다. 이들 기관의 최근 4년 새 부채비율 상승 폭(117.0%포인트)은 전체 공공기관(21.5%포인트)의 5배를 뛰어넘는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양대 에너지 공기업이다. 지난해 기준 한전과 가스공사의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각각 543.3%, 482.7%에 달한다. 한전의 경우 최근 5년(2019∼2023년) 중 202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다.

예정처는 최근 내놓은 ‘2023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 총괄 분석’에서 “한전은 올해 손익 규모에 따라 부분자본잠식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한전은 부채에 따른 하루 이자비용만 123억원에 달한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매출액 감소, 천연가스 원료비 및 총괄원가 정산 등으로 연결 기준 747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부채비율(482.7%)은 당초 가스공사가 예상했던 수준(432.8%)보다 49.9%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전 등 시장형 공기업들은) 장기적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고,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요금 통제 등으로 영업이익이 문제가 되면 공기업의 지속적 발전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첩첩산중 공기관 부채…재무건전성 악화일로

갈수록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이 잇따르는 점도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 요인이다. 대표적인 곳이 LH다. LH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 규모는 152조8473억원으로, 전년 대비 6조2301억원 늘었다. LH는 이미 사업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기획재정부의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돼 있는데, 최근 정부의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주요 추진 기관 역할을 떠맡으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LH 내부에서도 재무 문제와 관련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6월 열린 LH ‘2024년 제7차 이사회 회의록’에는 “수익성 등 제반 사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사업 물량 달성에만 매몰될 경우 장기적으로 부채비율의 증가뿐만 아니라 주택 품질 저하, 대규모 공실 발생 등이 우려된다”는 언급이 실렸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이사회는 2028년 기준 LH 부채가 236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 ‘중장기(2024∼2028) 재무관리계획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부채 규모보다 83조원 넘게 더 늘어나는 것이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218.3%에서 2028년 238%로 20%포인트가량 오를 것으로 봤다. 또한 LH는 자체 분석 결과 향후 10년간 투자 406조원, 회수 313조원 규모로 투자액이 회수액을 상회해 사업수지 적자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LH 측은 “보상 등의 과정에서 선(先) 재정 투입을 하고, 신도시와 건물이 조성된 후에 회수하는 사업구조에 따른 것으로, 재무 또는 사업상의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세계일보에 전했다.

◆요금 올리더라도 장기 건전성 확보가 관건

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중장기 관리계획을 마련한 상태다. 이날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는 공공기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수정된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안을 ‘2024∼2028 국가재정운용 계획’의 세부 항목으로 다음 달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2022년 6월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강화방안’을 내놓으면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작성 기관 27곳 중 LH를 포함한 14곳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들 기관의 재무상태가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특별 관리’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재무위험기관은 비핵심 자산의 매각, 투자·사업 정비, 경영 효율화 등을 벌여 2026년까지 42조4000억원의 재정 건전화를 이루는 내용이 골자인 ‘건전화 계획’을 시행 중이다.

도로공사의 경우 내년 부채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2028년엔 부채 총액이 50조원(부채비율 100%)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세종고속도로 등 준공이 임박한 사업에 대한 투자 규모 증가 탓이다. 도로공사는 영종·인천대교를 포함한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등 현 정부 정책 이행에 따른 적자 확대라 정부 예산 지원을 바라고 있다. 성사되지 않을 경우 30년 이상 노후 고속도로 교량 등 구조물에 대한 성능향상 작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보인다. 이에 도로공사는 자산매각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2조5840억원 규모의 자구노력 목표를 제시했다.

전체적으로도 공공기관의 재정 상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전의 2023년 부채 규모(별도 기준)는 전년 대비 11조2183억원 늘어난 120조1813억원으로, 1년 새 증가 규모가 가장 컸다. 한전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밖에 답이 없지만 물가 부담을 고려하면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나빠질수록 공공기관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특성상 현 정부의 재무관리 어려움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요금 인상은 원래 법대로라면 물가 관리 기관과 협의하면 되는데,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의 당정협의가 더 큰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며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이 공공요금 가격 결정에 개입하면 요금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공기업들이 부채를 많이 지고 있고, 그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서 또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 문제는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경제학)는 “현재 윤석열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라며 “나는 건전성이 제일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려야 할 가스, 전기요금은 올리고, (요금 인상으로) 어려운 사람이 생기면 바우처를 지급하는 식으로 기존 예산에서 처리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강진 기자, 재계팀 종합, 세종=안용성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