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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신경림 위원장 "간호법 국회 통과…이제 첫 단추 꿰었으니 더 열심히 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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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특별제정위원회 위원장

간호사 진료지원 법제화 위해

19년간 다섯 번이나 시도했지만

수많은 난항에 부딪히며 좌절

마침내 입법 반영…큰 숙원 해소

간호법이란 큰 가닥 잡혔으니

시행령 등 구체적 내용 담아야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수많은 간호인들의 염원이 담긴 ‘간호법’이 통과됐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은 기쁨의 눈물과 미소를 지었다. 1977년부터 47년간 간호법 제정을 추진해 온 간협은 이를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환영했다.

스포츠월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특별제정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된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대표적인 인물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특별제정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수많은 난관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 건강권리의 수호를 위해 헌신해왔다. 29일 신 위원장을 만났다. 그동안 대한간호협회가 걸어온 길과 간호법 제정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됐다. 소감은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이번 법 제정을 준비하면서 도와주신 많은 여당, 야당, 정부 구성원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특히 간호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께 깊이 감사드린다.”

-간호법, 얘기는 많이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설명해달라

“간호법은 65만 간호인들의 숙원이었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제도권의 의료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했다. 의료 분쟁이 생길 때 간호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법은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한다’는 의료법 한 줄 뿐이었다. 이번에 ‘PA 간호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진료지원 간호사’다. 의사가 부족한 수술실에서 의사 업무를 하는 간호사로 명백한 불법이다. 간호사가 배우지도 못했고 하지도 못하는 일을 시킨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병원의 이익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하다 의료사고나 분쟁이 발생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 행위를 한 간호사가 져야 한다. 법적 근거 없는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례는 없는가

“반대 상황도 있다. 간호사가 혈압을 재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의사가 있는 병원 안에서 재는 것은 괜찮지만, 병원 밖에서 재면 불법이다. 학교 보건실에서 다친 학생을 간호사 면허를 가진 양호선생님이 드레싱(상처치료)을 해주면 불법이다. 학교 안에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없는 지역 보건소에서 간호사가 할머니 혈당을 체크해 주는 것도 불법이다. 다 할 수 있는데 의사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이번 간호법 제정으로 해소됐다.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하면 안 되는지가 명확해졌다. 이제 안심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환자의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간호법 제정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인가

“국민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건강권리’를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우리가 내는 국민건강보험과 세금으로 운영된다.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히 국민이 가져야 할 건강권리는 의료기관과 의사에게 있었다. 관련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에게 시키고, 간호사가 할 일을 간호조무사에게 시키며, 그 차액을 부당한 이익으로 가져갔다. 국민은 똑같은 돈을 내고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또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 수 역시 문제다. 선진국은 5명에서 7명 정도인데 우리는 16명이 넘는다. 당연히 제대로 된 관리를 받기가 어렵지 않겠나. 간호사도 업무가 과중해진다. 이런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간호법 제정이었다.”

-그동안 간호법 제정 통과를 위해 노력하신 과정은

“간호법은 국민 삶에 필요한 법인데,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한 주제였다. 지난 19년간 5번의 법안 제정 시도를 할 정도였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본회의에 통과되고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을 통과하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반대가 워낙 심해 통과는 물론 발의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또 상대가 우리 사회의 초엘리트 집단인 의사협회라서 정치력과 자본의 차이도 큰 싸움이었다. 22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 더 심해졌다. 서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분위기에서 여야 합의로 법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런 시국에서 기존 법률 수정안이나 하위법을 만드는 것도 아닌 독자적인 법률 체계를 가진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일인데 쉬울 수가 없었다. 기준은 명확했다. ‘건강에는 여야가 없다’는 것과 무조건 여당과 야당의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것. 정말 국회와 보건복지부에서 살다시피 했다. 새벽부터 가서 국회의원 한 분 한 분 만나고 정부 관계자를 만나서 회의하면서 설득을 이어갔다. 야당 의원을 만나면 여당 의원도 만났다.”

-간호협회의 상황은

“우리 협회 내부도 문제였다. 잇단 간호법 제정 실패로 ‘간호법은 힘들겠다’는 패배 분위기가 심해졌다. 간호법이 통과되려면 힘을 합쳐야 했기 때문에 전국 지부를 다니면서 간호법 특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꼭 해낼 거다’라며 조직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로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 의료 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간호사들의 입장은 분명했다. 절대로 환자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가 위기의 순간인 코로나 때 의사 파업으로 의사들이 없을 때도 우리 간호사들은 국민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국민이 아플 때 믿을 구석이라고는 의사와 간호사밖에 없다. 당연히 현장을 지켜야 했다. 이런 국민과의 신뢰가 오늘 간호법 통과를 만들어 낸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간호법이 필요했던 이유는 하나다. 간호가 필요한 의료 현장에서 국민 곁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제 간호법 제정이라는 큰 가닥이 잡혔으니 시행령, 시행규칙에서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선진국 수준까지 늘리고, 환자들의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이 너무 힘들어 현장을 떠나는 간호사가 정말 많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현장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간호 환경과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간호 역사가 100년이 됐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간호와 돌봄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다. 이제 첫 단추가 꿰어졌으니 더 바빠질 것이다. 반대하는 이익집단의 목소리도 더 커질 것이다. 다시 신발끈을 묶고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많은 간호사들과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응원해주신다는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간호법이 잘 자리 잡아서 국민의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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