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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횡설수설/우경임]“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 260개로 남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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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죽더라도 찾고 죽어야지, 그냥 죽을 순 없다”던 아빠였다. 25년간 전국 방방곡곡에 ‘실종된 송혜희를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을 걸었던 송길용 씨(71)가 결국 딸을 찾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숨졌다. 지난달 26일 현수막을 싣고 나갔다가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송 씨는 25년간 매주 전단 4000장을 뿌렸고, 매달 현수막 300개를 걸었다. 평소와 달리 연락이 뜸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현수막 업체가 실종자 가족 단체에 연락하면서 그의 죽음이 알려졌다.

▷송혜희는 17세가 되던 1999년 2월 학교에 갔다가 귀가하는 길에 행방불명됐다. 경기 평택시 집으로부터 1km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내린 후 흔적이 사라졌다. 당시 버스 운전사가 30대 남성이 따라 내렸다고 증언했으나 용의자를 잡지 못했다. 현수막 속의 딸은 여전히 교복을 입은 앳된 모습이다. 배움이 짧은 아버지는 전교 1, 2등을 다투고 서울대를 가고 싶다던 딸 혜희를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딸이 실종되고 처음 3년간은 부부가 함께 전국을 돌며 전단을 뿌렸다. 도대체 맨정신으로는 다닐 수가 없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전단을 나눠주고, 또 마시고 나눠주곤 했다. 그동안 엄마는 뼈만 앙상히 남은 채로 몸과 마음에 병을 얻었다. 결국 엄마는 딸이 실종되고 7년이 지났을 때 전단이 흩어진 방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아내 장례를 치르고 따라가겠다고 결심했던 송 씨의 마음을 돌린 건 남은 자식이었다. 큰딸은 “아빠 죽으면 같이 죽겠다”며 오열했다.

▷‘신장 163cm, 얼굴이 둥글고 검은 피부, 흰 블라우스 빨간색 조끼 파란색 코트.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이 현수막은 늘 새로 단 듯했다. 송 씨는 한 달에 현수막을 300개가량 걸었다. 달이 바뀌면 혹시 찢어졌을까, 떨어졌을까 첫 현수막부터 점검을 하거나 교체했다. 현수막을 걸다 낙상을 당해 허리를 다쳤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최근엔 몸이 온전치 못했다. 주변에선 그만하라고도 했다. 그래도 “자식이라 포기를 못 하겠다”며 다시 집을 나섰다. 지금도 전국에 현수막 260여 개가 걸려있다.

▷2022년 기준 실종 당시 18세 미만이던 1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은 981명이다. 송 씨의 딸 혜희처럼 20년 이상 장기 실종 상태인 아동이 859명을 차지한다. 최근엔 유전자검사, 폐쇄회로(CC)TV 등 기술의 발달로 실종 아동 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송 씨 가족처럼 실종 아동을 둔 가족의 삶은 아이를 잃어버린 날에 멈춰 버린다. 실종 가족을 찾는 방송에서 송 씨는 딸을 향해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돌아와만 달라”고 했다. 시청자에겐 “연락 주시면 신장이라도 떼어 드릴게요”라고 했다.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을지, 그 비통함을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겠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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