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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사설] ‘세계 딥페이크 피해자 53%가 한국인’, 정치인들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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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0일 대전경찰청에서 경찰, 대전시, 대전시교육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 대전경찰은 중·고등학교 151곳을 대상으로 학교전담경찰관이 딥페이크 영상 성범죄 특별 범죄 예방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특별수사 2팀, 모니터링 1팀, 디지털 포렌식·피해자 보호지원반에 25명을 투입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내년 3월까지 집중단속을 실시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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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는 해외 보안 업체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지난해 7~8월 딥페이크 사이트 등에 올라온 영상물 9만5820건을 분석했더니 성착취물에 등장한 개인 중 53%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피해자 중 미국인이 20%로 둘째로 많았는데 한국과 격차가 컸다. 특히 성착취물 최다 표적이 된 10명 중 8명이 한국 가수였다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임을 시사한다”고 했다.

이 조사가 이뤄진 지난해 7~8월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등장 이후 일반인들도 딥페이크를 쉽게 만들 게 됐던 때였다. 하지만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인데 우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여대생, 여군, 교사, 심지어 초·중·고교생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으로 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제껏 피해를 당한 학생과 교사가 500명이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확인 안 된 피해자까지 감안하면 그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지금 막지 못하면 한국이 음란물의 진앙을 넘어 ‘왕국’이 될 수 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 규제망이 허점투성이였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을 제작해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드물고 단순 소지한 경우는 처벌 대상도 아니다. 딥페이크를 제작하거나 소지한 사람도 ‘유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 보니 쉽게 법망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영국 법무부는 지난 4월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기만 해도 유포 여부와 관계 없이 처벌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유명 딥페이크 포르노 사이트 두 곳이 영국에서 접속을 차단했다고 한다. 이런 강한 규제가 가장 필요한 곳이 한국이다.

딥페이크 유통 채널인 소셜미디어 업체에 대한 규제도 검토해야 한다. 딥페이크 영상은 보안 수준이 높아 수사망을 피하기 쉬운 텔레그램을 통해 주로 이뤄진다. 최근엔 이곳에서 성착취물을 만든 가해자들이 가상화폐를 받고 수요자들과 거래까지 한다고 한다. 텔레그램은 이용자가 많을수록 광고 수익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여서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관련 입법을 방기해왔다. 그러다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라는 지적까지 받게 됐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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