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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노화 두려워한 80대 엘리트 부부, 그 집 지하실엔 청년 감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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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금 문학은] 오싹한 공포 소설 3권

조선일보

홀리

스티븐 킹 장편소설 |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596쪽 | 2만1000원

조선일보

적산가옥의 유령

조예은 소설 | 현대문학 | 212쪽 | 1만5000원

조선일보

우치다 햣켄 기담집

우치다 햣켄 소설 | 김소운 옮김 | 글항아리 | 252쪽 | 1만6000원

열대야는 물러갔지만, 한낮엔 여전히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이 이어진다.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겨드랑이와 등에 땀이 축축하게 밴다. Books가 매달 선보이는 ‘지금 문학은’ 특집은 늦더위 날리는 오싹한 공포(호러) 소설이다. 으스스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끈적하게 들러붙는 늦더위를 날린다. ‘호러의 왕’ 스티븐 킹, 공포·스릴러 소설로 이름을 알린 조예은, 스산한 공포 분위기의 대가 우치다 햣켄이다.

◇노부부의 지하실에선 무슨 일이

‘캐리’(1974) ‘샤이닝’(1977) ‘미저리’(1987) 등 숱한 걸작을 낳은 스티븐 킹이 신작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공포물의 대가답게 능수능란하게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 온 열혈 독자라면 주인공 ‘홀리’를 기억할 것이다. ‘빌 호지스 3부작’에서 조연 탐정으로 등장, 이번에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조선일보

늦더위를 이기는 데는 오싹한 공포 소설이 제격이다. 선혈이 낭자한 미국식 호러,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식 호러, 짧고 간결한 하이쿠처럼 여백이 흐르는 음산한 일본 호러 중 하나를 골라 읽으며 더위를 잠시 잊는 건 어떨까.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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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코로나 시국. 홀리가 운영하는 ‘파인더스 키퍼스 탐정 사무소’에 사라진 딸을 찾는 한 어머니의 의뢰가 들어온다.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딸의 행적을 좇던 홀리는 직감한다. 다른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겠다고. 홀리의 탐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설의 다른 한 축에서는 엽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신체 수명을 늘리기 위해 젊은이를 납치해 살해하는 80대 엘리트 노부부가 있다. 노부부에게 가장 큰 공포는 ‘노화’. 두 사람은 지하실에 철창 감옥을 설치했다. 한편에 놓인 띠톱과 절단기에 대한 묘사가 눈에 띈다. 섬뜩한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이들은 대체 왜 젊은이들을 납치할까. 소설 표지가 숟가락인 이유가 있다. ‘위잉~’ 하고 돌아가는 믹서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선다.

◇한 맺힌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

소설 ‘적산가옥의 유령’은 4대에 걸쳐 적산가옥에 감춰진 기이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 한국형 호러·스릴러로 호평받은 소설가 조예은의 작품이다.

10월 어느 새벽 ‘나’의 외증조모 박준영이 적산가옥의 별채에서 바닥에 한쪽 귀를 댄 자세로 죽은 채 발견된다. 외증조모의 유언에 따라 그 집에 살게 된 나는 귀신이 들린 것만 같다.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고 환영을 본다. 이를테면 열다섯 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텅 빈 연못을 들여다본다거나…. ‘별채의 서늘한 기운은 이미 벌레처럼 내 어깨와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한기를 쫓으려 목덜미를 문지르게 된다.

‘나’를 괴롭히는 건 일제강점기 그곳에 살았던 가네모토 유타카라는 소년이다. 그 집에 조선인 간병인으로 취직한 외증조모의 시점에서 비밀을 한 겹 한 겹 벗겨 낸다. 집에 한 맺힌 유령이 산다는 클래식한 설정이지만, 반전이 벌어진다. 과거의 유령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가까이 있다.

◇나를 노려보는 스산한 얼굴

일본 소설가 우치다 햣켄(1889~1971)의 소설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이자, 미시마 유키오로부터 ‘공포 분위기의 대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은근하고 여백 있는 스산함이 매력. 세련된 문체가 이토록 오싹할 수 있다니. 누가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책에 실린 열다섯 편의 기담을 숨죽여 읽게 된다.

단편 ‘환영’은 유리를 끼운 미닫이문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내 얼굴에 관한 이야기. 다다미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운 화자는 매일 밤 나를 노려보는 내 얼굴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힌다. ‘무서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행여 그 얼굴이 미닫이문 안쪽으로 들어올까, 이부자리 쪽으로 다가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나 숨이 막혔다.’

단편 ‘거적’에선 도둑고양이를 없애려 설치한 덫에 족제비를 닮은 난생처음 보는 짐승이 붙잡힌다. ‘나’는 그 짐승을 매일 같이 괴롭히고, 그 짐승은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얼마 뒤 고향집에 특이한 손님이 찾아온다. 여우를 이용해 요술을 부리는 여인 ‘우메쓰구’다. 화자는 그 여인에게서 죽은 짐승의 소리를 듣는다. ‘그 이상한 짐승이 찾아온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무언가 찾아온 것 같은 오싹함이, 더위를 싹 날린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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