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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친구한테 통장 빌려줬다가 억대 투자금 반환 소송…대법 “대신 갚아줄 책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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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통장으로 해외 선물 투자

투자금 반환 약정했지만 잠적

계좌주에게 억대 소송 낸 투자자

1·2심 “돈 일부 대신 갚아줘야"

대법 “갚아줄 책임 없다”

헤럴드경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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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친구에게 본인 명의의 통장을 양도했다가 억대 투자금 반환 소송을 당했더라도, 이를 대신 갚아줄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좌 사용을 허락하긴 했지만 불법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A씨를 상대로 1억 4000여만원대 투자금 반환을 요구한 대여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원심(2심)은 통장을 친구에게 양도한 A씨가 6000여만원을 대신 갚아줄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반대로 판결을 뒤집었다.

A씨는 2011년께 고등학교 동창인 B씨에게 본인 명의의 통장(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카드, 비밀번호 등을 양도했다. 당시 B씨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B씨는 A씨의 계좌를 이용해 2020년께 투자자에게 돈을 지급받은 뒤 해외 선물 등에 투자했다. 그러다 투자자인 C씨에게 투자금 반환을 요구받자, A씨를 사칭해 “돈을 모두 갚겠다”고 약정했다. 하지만 이후 B씨는 약속대로 돈을 갚는 대신 잠적했다. 결국 사기죄로 수사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투자자 C씨는 B씨가 소재불명되자, 계좌주 A씨를 상대로 “약정대로 1억 4000여만원의 돈을 갚으라”며 소송을 걸었다.

1심과 2심에선 C씨가 일부 이겼다. 하급심(1·2심) 법원은 B씨 대신 A씨가 C씨에게 6000여만원을 갚아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47단독 조실 판사는 지난해 3월, C씨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계좌를 양도할 당시 B씨가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약 10년간 본인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게 했고, 거래정지신청 등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A씨도 본인 명의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투자금 일부를 대신 갚아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8-1민사부(부장 정인재)는 지난 4월, 1심 판단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의 결론에 대해 수긍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방조에 의한 책임을 지나치게 넓게 봐선 안 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B씨에게 통장을 빌려준 대가를 받았다고 볼 자료가 없고, 현재 B씨에 대한 소재불명으로 수사가 중지돼 B씨가 C씨를 속였는지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A씨가 계좌 이용현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B씨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런 사정을 종합했을 때 A씨가 계좌 사용을 허락함으로써 불법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이 A씨가 공동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결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4번째 재판에선 A씨가 승소할 것으로 보인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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