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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딥페이크 당한 줄 모르는 피해자들… 텔레그램은 수사 비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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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처벌 왜 어렵나

암호화·대화방 폭파로 증거 인멸

텔레그램, 이용자 정보 제공 안 해

N번방 때도 韓 협조 요청 무응답

허위영상 범죄자 절반은 못 잡아

피해사실 인지 못해 신고율 저조

어렵사리 재판 넘긴 제작·배포범

3명 중 2명꼴 1심 집행유예 그쳐

정부 ‘시청만 해도 처벌’ 입법 추진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 합성물) 기술을 이용한 불법 합성물 피해가 확산하면서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지만, 가해자를 검거해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성물의 1차 유통 경로인 텔레그램으로부터 범죄 자료를 제출받기 어려운 데다 범행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피해자를 특정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재판에 넘겨도 관련 범죄 피고인 3명 중 2명은 1심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

“강력 수사하라” 진보당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에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강력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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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내 수사기관은 자체적인 이미지 분석 기법과 국제 수사기관과 공유하는 대응법 등을 활용해 딥페이크를 비롯한 불법 영상물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유포된 영상물을 삭제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도 수사기관과 같이 ‘영상 DNA 필터링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원본 영상 해시값(고유값)뿐 아니라 영상 고유의 DNA를 대조해 변형된 영상물까지 잡아낸다.

이 같은 방식으로 국내 사이트에 올라오는 불법 영상물은 대부분 대응이 가능하지만, 해외 플랫폼의 경우 쉽지 않다. 텔레그램처럼 보안·익명성이 높은 폐쇄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한계가 더 크다고 한다. 텔레그램 메시지는 송신 즉시 암호화되고 대화방 ‘폭파(폐쇄)’ 기능으로 증거인멸도 손쉽게 가능하다.

이정남 한국디지털포렌식전문가협회 사무총장은 “방이 폭파돼도 데이터가 삭제되는 게 아니라 비공개 처리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수사기관에서도 텔레그램 측에 접근 제한 등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텔레그램이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을뿐더러 삭제된 메시지나 폭파된 방의 정보 등이 텔레그램 서버에 남았더라도 이를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N번방’ 사건 당시에도 경찰은 텔레그램에 수사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텔레그램은 답하지 않았다. 사이버범죄를 수사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을 수사할 때 정보 수집이 제일 어렵다”며 “플랫폼 협조를 받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텔레그램을 통한 성·마약 범죄 등은 ‘엑스’(X·옛 트위터)를 포함한 SNS,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추적 등 다른 플랫폼에서 얻은 정보로 범죄자를 검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3년간 허위영상물 범죄 검거율(발생건수 대비 검거건수)은 2021년 47.4%, 2022년 46.9%, 2023년 51.7%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광범위한 딥페이크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범행 여부를 알기 어려워 실제 사건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딥페이크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딥페이크 수사는 피해자 진술이 가장 큰 증거가 될 수 있는데,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피해 신고가 없으면 합성물을 일일이 따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성범죄 특성상 지인이 범행에 연관될 가능성이 큰데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 대상이 된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피해자 주변을 수사해 용의자를 좁히는 방법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딥페이크 논란이 불거지고도 일선 시·도 경찰청에 정식으로 접수된 딥페이크 피해 신고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수사 당국은 “적극적인 신고·제보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사무총장은 “(딥페이크 수사는) 보통 6개월 이상 걸리고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만 국가적 수사 역량을 총동원한 만큼 일부 범행에 대해선 예상보다 빠르게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가해자들은 높은 수위의 합성 음란물이 공유되는 ‘상위방’ 입장 기준을 높이는 등 수사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 이들은 “‘갠텔’(개인 텔레그램)을 하지 않으면 꼬리 잡힐 일이 없다”거나 범정부 수사에도 “안 걸린다”며 자신하고 있다.

딥페이크 제작·배포범을 적발해 재판에 넘겨도 ‘중형’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법원 판결서 열람을 통해 검색한 최근 3년간 성폭력처벌법 위반(허위영상물 편집·반포) 사건 1심 판결문 9건을 보면 법원은 피고인들에게 모두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다만 실형은 3건에 불과하고 나머지 6건은 집행이 유예됐다. 이마저도 불법촬영·성착취물 소지·마약 같은 다른 혐의가 함께 인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딥페이크 범행에만 내려진 단죄도 아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실제 피해자에게 성착취를 한 것이 아니라거나 돈을 받고 판 것은 아니라는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제주지법은 2022년 4월 텔레그램에서 여성 연예인 딥페이크 영상 1500여개를 만들어 판 피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제작 과정에서 실제 대상자에 대한 성착취 행위가 수반되지는 않았고, 아동·청소년 등 대상자를 직접 촬영한 사진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법익 침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참작했다.

솜방망이 처벌 지적에 따라 정부는 성범죄와 관련된 딥페이크물을 소지·구입·시청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제작·유통에 대한 처벌 기준을 상향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도 이날 국회에 낸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검찰총장으로 취임하게 되면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 운영자들의 법적 책임과 검찰의 대응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부처별로 운영 중인 신고접수 방법을 통합하고, 딥페이크물 삭제 등 피해자 지원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별도로 국가안보실은 딥페이크 기술 악용에 대응하는 내용을 포함한 사이버안보기본계획을 수립했다고 이날 전했다.

이정한·이예림·이종민·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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