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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단독] 청소기 속 머리카락에 잡혔다. 고교 동창 '마약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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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광명경찰서.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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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을 심리적으로 지배해 장기간 금품을 갈취하고 함께 마약을 투약한 20대 남성이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20대 강모씨를 공갈, 협박,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8일 구속 송치했다고 2일 밝혔다. 강씨는 고교 동창인 A씨에게서 지난해 7월부터 약 8500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A씨 등과 함께 대마·필로폰 등을 투약한 혐의도 있다. 자수한 A씨를 비롯해 친구 3명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됐다.

경찰은 강씨가 마약 밀매조직의 일원인 것처럼 행세해 A씨를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한 것으로 보고있다. A씨는 동선 등 일거수일투족을 강씨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A씨의 자택을 수시로 드나든 강씨는 뒷짐을 지고 머리로만 바닥을 지탱하게 하는 원산폭격 자세를 시키거나, 가위로 손가락을 자를 것처럼 위협하는 등 협박도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의 진술과 피의자들의 휴대전화 포렌식, 계좌 추적 등을 종합해 혐의를 특정했다.

이들은 마약에도 손을 댔다. 텔레그램을 통해 구매한 마약을 A씨 자택에서 투약했다. A씨 자택 청소기 필터에 강씨 등의 머리카락이 남아 있어 투약 혐의를 밝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강씨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소량의 대마초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실제 마약 조직원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고, 혐의를 인정했다”고 말했다.

범행은 A씨의 이상행동을 의심한 아버지의 추궁에 밝혀졌다. 아버지의 추궁에 A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마약 투약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보복이 두려워 강씨에 대해선 끝까지 함구했다. A씨 아버지는 “경찰에 도움을 구하자고 했지만 아들이 극구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 5월 A씨가 “마약값을 갚아야 한다”며 아버지에게 4000만원을 빌린 뒤 다시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의 힘만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범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을 찾아갔다. 이 소장까지 합세해 설득한 끝에 A씨는 지난 6월 말 경찰에 자수해 범행 전모를 털어놨다. A씨 아버지는 “강씨를 친구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이기동 소장은 “A씨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도박, 마약 등 범죄에 연루돼 약점이 잡혀 신고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를 더 키우기 전에 자수하는 등 경찰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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