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5 (일)

[르포]“동아리 안 하고 숨어 지내야겠다”...새학기 대학가 ‘딥페이크 포비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NS 비공개 전환…” 스스로 조심하자 분위기

‘나도 모르게 내 합성물이…’ 사람 불신 우려도

헤럴드경제

경희대 학내 게시판에 붙은 게시문. 딥페이크 합성물 문제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딥페이크 포비아(공포증)’가 9월의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었다. 최근 한 대학에서 동문 여성들의 사진을 활용한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이 이른바 ‘지인 능욕방’이라는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사건이 알려지면서다.

이어 다른 대학에서도 연쇄적으로 피해 사례들이 확인됐다. 새학기를 시작한 대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를 우려하고 질타했다.

2일 정오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방학 기간이었던 지난달 중순 이 학교 구성원 수십명의 딥페이크 합성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된 사실이 알려졌다. 학생회관 앞에서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합성물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 김모(20·여) 씨는 “혹시 모르니까 개인 SNS는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 재학생은 “(얼굴이 나온) SNS 사진은 내리고 신경 쓰이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단속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헤럴드경제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 여성·엄마들의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모(20·남) 씨는 “(학내) 동아리에서 그런 일이 터졌다는 기사 내용을 보고 ‘개강을 해도 그냥 동아리 활동 안 하고 숨어 지내야겠다’ 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인하대 측은 딥페이크로 피해를 본 학교 구성원들이 신고하면 법률 대응과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 홍보팀 관계자는 “인권센터를 통해서 학생들의 피해 사실을 접수받고 있다”며 “졸업생들 중에서도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알아서 피해자 규모를 온전히 파악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불신’ 걱정돼 = “무력감이 느껴졌어요. 가해자가 주변에 같이 있는 사람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고 나와 밥도 같이 먹은 사람일 수 있으니까 무섭기도 하고요.”

같은날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 신모(21·여) 씨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길 것을 경계했다. 그는 “피해자 분들은 (심리적으로) 정말 힘들 것 같다”며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왜 조심해야 하는지, 그게 억울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모(20) 씨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익명으로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캠퍼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김도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대도 딥페이크로 홍역을 치렀다. 학교 졸업생들이 작당해 동문 여성의 얼굴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수년 간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이 터지면서다. 수십명의 피해자 가운데 서울대 동문들도 여럿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 2학년 진모(20) 씨는 “사실 조심한다고 될 부분이 아니고 누구나 타깃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학교와 정부 차원에서 보다 엄격하게 텔레그램 성범죄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학내 게시판엔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공조하는 대학 사회를 규탄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이 붙었다. 폭력적 대학 문화를 개선하고, 피해자와의 연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학생 조모 씨는 “언론에선 매일 딥페이크로 시끄러운데 정작 학교에선 재학생들에게 주의하라는 알림이 없었다. 정작 학교는 학생들의 큰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kimdoyoon@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