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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사설] ‘패키징 혁명’ 흐름 타려면 반도체 생태계부터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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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영희 디자이너





혁신의 최전선 패키징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하락





정부가 ‘검증의 벽’ 넘게 소재·부품·장비업체 지원을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 2위를 달린다.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프로세서에 보내는 메모리 반도체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AI 반도체와 고성능 컴퓨팅의 열쇠로 부상하고 있는 패키징에선 한국의 진전이 없다. 패키징은 로직·메모리·센서 등 다양한 칩 여러 개를 쌓고 묶어 성능을 높이는 반도체 후(後)공정 기술인데 이젠 혁신의 최전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보고서에서 “첨단 패키징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위주로, 기존 반도체 산업 구도가 급격히 바뀔 것”이라고 분석할 정도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61%를 차지하는 대만 TSMC의 핵심 경쟁력도 바로 이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패키징 경쟁력은 우려할 수준이다. 글로벌 톱10 기업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첨단 기술에서 밀린 한국의 세계 패키징 시장점유율은 2021년 6%에서 지난해 4.3%로 낮아졌다. 첨단 패키징은 대만과 미국에 밀리고, 범용 반도체용 전통 패키징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에 쫓기고 있다. 중국 반도체 전시회에서 중국 패키징 업체의 괄목할 성장을 확인한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대표들이 “10년 안에 우리 다 망하겠다”고 탄식할 정도였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첨단 패키징 핵심 소재·장비의 95%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이 잘되려면 반도체 기업과 소부장 업체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 업계는 고객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고, 애써 만들어도 검증조차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대만처럼 중소 반도체 소부장의 신제품이 TSMC·ASE 같은 반도체 제조·후공정 대기업 공장에서 품질 검증과 신뢰성 테스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국산 소재를 생산 과정에 사용했을 때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보전하도록 보험료를 정부가 제공하는 중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한국의 패키징 소부장 업체가 이런 ‘검증의 절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장 입지 규제와 인력 문제도 풀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도 화성·용인·평택은 수도권 규제에 짓눌려 있고, 이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가면 인력 수급이 문제다. 청년 근로자가 지방에 내려갈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과 AI 기본법, 전력망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반도체 업계 전체의 활력을 키워야 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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