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인사이드 스토리]집값 뛴 만큼 임대 보는 눈 차가워졌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분양가 치른 보상심리, 임대주택 거부감 키워
임대 있는 소형주택 한 동에 몰아 '소셜믹스 실패'
'완전한 믹스' 숙제…부적격은 더 엄격히 걸러야


"10억 내고 임대동 들어가는 거 아니냐?"

최근 분양한 서울의 한 아파트를 두고 나온 얘기입니다. 일반분양 물량인 전용 45㎡ 대부분이 임대주택(행복주택) 물량인 전용 36㎡과 같은 동에 배치돼서죠. 분양동과 임대동을 혼합하는 '소셜믹스(social mix)' 정책이 시행 중이지만, 주택형이 특정되기 때문에 '임대' 티가 나는 겁니다.

비즈워치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 배 아프고 더 부러워졌다?

분양가는 높아지고 청약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임대주택을 불편하게 보는 일각의 시선도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임대가 섞여 있어 집값이 안 오를 것 같다"는 푸념부터, "임대동이 왜 한강뷰냐"는 불만까지 다양하죠. 높은 분양가를 부담해야 하는 입주예정자는 비용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임대주택 혐오를 키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임대주택은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인센티브로 추가 용적률(허용용적률-법정용적률)을 받으려면 그 50%에 해당하는 면적에는 소형주택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내줘야 하죠.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용적률 상향을 위해 이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임대주택을 내놓는 만큼 일반분양 물량을 더 확보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서울시가 임대주택을 사갈 때 토지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가져가지만 건물은 표준 건축비라도 받을 수 있으니 분양수입이 증가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조합 입장에서는 소셜믹스도 지키면서 일반분양가도 높여 받으려면 전용 59㎡로 임대주택을 짓는 게 낫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청년 등의 임차인을 고려해 전용 36㎡, 49㎡ 등 소형 평형을 골고루 넣길 원하기 때문에 설계를 같이 하는 일반분양 물량도 그렇게 지을 수밖에 없는 건 불만이라고 하네요.

"강남에 한강 조망하는 임대동?"
분양가 뛰고 청약경쟁 세지면서
배 아파하는 청약자 '질시' 커져

이렇게 지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일반분양 계약자, 특히 소형 평형 당첨자는 임대주택의 존재 자체에 불만이 크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주택에 훨씬 저렴하게 사는 임대주택에 자신도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이유도 있죠.

저소득층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편법을 동원해 임대를 차지하는 이들 때문에 눈빛은 더 싸늘해집니다. 법인을 운영하며 회삿돈으로 개인 소득을 대체하는 개인사업자, 자영업자가 임대를 차지한다는 겁니다. 평범한 직장인은 소득이 투명하게 잡혀 꿈도 꿀 수 없는데 말이죠.

신청 자격이 까다로운 국민임대, 행복주택 말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장기전세주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득과 자산 문턱을 파격적으로 낮췄다는 장기전세주택Ⅱ(미리 내 집)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당첨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청약을 받은 '올림픽파크포레온' 장기전세주택Ⅱ 경쟁률은 60대 1 수준이었고요. 서류심사 대상이 되기 위한 가점은 10점 만점이었습니다. 서울시 연속 거주기간 10년 이상, 청약저축 납입 횟수 120회 이상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거였죠.

비즈워치

올림픽파크포레온 장기전세주택2 청약 결과 /자료=SH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완전한 '소셜 믹스',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은 필요합니다. 양질의 임대주택이 도시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죠. 갈등을 야기하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계층 간 격차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서울시에 따르면 임대주택 입주자 92%가 전용 59㎡ 이하 소형주택에 살고 있는데요. 40㎡ 미만 비율이 58.1%에 달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60㎡ 이상에 살기를 희망한다고 하네요.

'소셜믹스'는 임대주택 거주자가 차별받지 않기 위한 장치인데요. 서울시내에서 임대와 분양이 혼합된 아파트는 437개 단지(임대 약 8만1000가구)고요. 이중 129곳(30%)은 임대동을 분리해 두고 있습니다. 308곳(70%)은 '소셜믹스' 형태인데 그 방식도 여러가지죠.

비즈워치

'소셜믹스' 변천사와 차별 문제 /자료=서울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대동을 따로 둔 단지에 사는 한 일반분양 당첨자는 "아이가 크면 친구가 '무슨 동에 사냐'고 물을까 봐 걱정"이라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재산권 추구를 사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라고 탓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고요.

서울시는 2022년 4월 임대주택 혁신 방안 발표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신축 아파트에 대해 모두 완전한 소셜믹스를 구현토록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와 분양주택의 평형·배치에 차별이 없어야만 사업시행인가를 내주고 있다"며 "동호수의 경우도 조합원·일반분양 추첨과 동시에 또는 그전에 추첨해 임대 여부를 알지 못하게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질 임대주택' 많아야 하지만
"꼭 초고가 단지에도 있어야 할까"
시대 변화와 정책효과 따져볼 만

좋은 임대주택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하고 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없애는 것은 이 사회의 숙제일 겁니다. 임대에 살아도 눈총받지 않는 세상이 되기 전까지는요.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용적률 완화를 받은 뒤 임대주택 차별을 유발한 경우 용적률을 취소할 순 없겠지만 그 혜택에 따른 수익을 반환청구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부적격자 때문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 입주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적발 시 퇴거뿐만 아니라 금전적 제재까지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차 소장은 한정된 임대주택을 적격 대상에 공급하려면 입주자 본인뿐만 아니라 세대 구성원 전체의 소득, 자산 수준을 검증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필요하다면 국세청과 협업해서라도 말이죠.

물론 역효과도 생각해야겠죠.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행 방식이 허술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공에서 지나치게 사유재산을 들여다보고 개입하다 보면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요즘 강남권 재건축처럼 분양가나 매매 시세가 수십억에 달하는 고가 단지에 꼭 임대주택이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유자와 임대 입주자의 자산 격차가 너무 벌어진 현실 탓에 소셜 믹스의 효과나, 사회적 효익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고소득층이 밀집한 초고가 단지에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는 정책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오히려 자산 가치가 커진 임대주택을 분양하거나 시장에서 판 뒤 그 수입으로 중산층 수준의 단지에 더 많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제언합니다.

ⓒ비즈니스워치(www.bizwatch.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