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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불법전단 뗀 여중생 송치 경찰에 항의 폭주…재물손괴죄 해당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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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환 변호사의 뉴스로 보는 法]

뉴스1

용인동부경찰서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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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뉴스1) 변진환 법무법인 대청 변호사 = ◇ "무서워 살겠나"…불법 전단 뗀 여중생 송치 경찰서에 항의 폭주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은 전단을 뗐다는 이유로 여중생을 검찰에 넘긴 경찰서의 게시판이 항의 글로 폭주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현재까지 용인동부경찰서 홈페이지 민원창구 자유게시판에는 400여 개의 항의 글이 쏟아졌다. 3일 불법전단을 무심코 뗀 여중생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 송치됐다는 언론보도가 화제에 오르면서부터다.

여중생의 어머니 A 씨에 따르면 딸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다가 거울을 가리는 전단을 무심코 떼버렸다. 해당 전단은 아파트에서 정식으로 승인한 전단도 아니었다. 전단은 아파트 자생단체에서 무단으로 붙인 것으로, 아파트 하자보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A 씨에게 "그 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없으니까 저희는 송치 결정을 한 거다. 혐의는 명백하다. 그 행동 자체가 형법에서 규정하는 재물손괴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딸이) 나이 상으로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맞잖나. 촉법소년이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고작 불법전단 한 장을 뗐다는 이유로 10대 여학생이 검찰에 송치됐다는 소식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용인동부경찰서 게시판에 몰려가 "앞으로 불법 부착물 떼려면 경찰서에 문의부터 해야 하냐", "집 앞에 불법전단 뗐는데 검찰 송치될까 봐 먼저 자수하겠습니다", "어디 전단 무서워서 살겠나?", "용인동부경찰서 경찰들은 참 할 일이 없나 보다", "여학생이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이 걱정이다" 등의 질타를 퍼부었다.

◇ 변진환 법무법인 대청 변호사 "법집행은 여론에 따라 달라질 수 없으나 국민 법감정에 맞아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불법전단을 떼어낸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형법 제366조에 따르면, 문서손괴죄는 타인 소유의 문서를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함으로써 성립한다. 여기서 '문서의 효용을 해한다는 것'은 문서를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일시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따라서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어느 장소에 게시 중인 문서를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떼어내는 것과 같이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형성된 종래의 이용 상태를 변경시켜 종래의 상태에 따른 이용을 일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에도 문서죄가 성립할 수 있다.

본 사건의 경우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은 해당 아파트 내 주민자치 조직이 하자보수에 대한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 부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중학생이 제거한 것은 '타인 소유의 문서'를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떼어낸 행위로 재물손괴죄 성립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불법 게시물을 제거한 것이 어떻게 죄가 되냐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대법원은 "형법상 재물손괴죄에 있어서의 재물에 해당하는 이상, 그것이 무단으로 도로변에 설치된 불법광고물이나 불법게시물이라고 하더라도 손괴죄의 객체가 된다"고 본다(대법원 1999. 6. 22. 선고 99도899 판결 등 참조). 즉, 법리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재물손괴죄가 성립할 수 있는 사안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의 경우 '위법성이 조각'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위법성 조각이란 행위가 형식적으로는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볼 때 정당화될 수 있어 위법성이 없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위법성 조각 사유로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긴급피난이 있다.

본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서 하급심 판례는 피고인이 현수막을 철거한 행위를 두고 "피고인 또는 이 사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사건 현수막을 게시한 피해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등의 법정절차를 취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이 사건 현수막 철거행위는 법률 또는 업무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를 참고하면 본 사건에서도 정당 행위로 인정될 여지가 크지 않다.

정당행위가 인정되려면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뿐 아니라, 긴급성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경우 긴급성이나 다른 수단의 부재를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

재물손괴죄 여부는 개별사건의 구체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하므로 본 사건의 결론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불법전단을 제거하는 행위가 과연 사회상규에 반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는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법치주의에서는 여론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보편적인 법감정에 반하는 법집행 또한 정의롭지 않다. 따라서 법적 안정성과 법치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국민들의 상식과 법감정을 존중하는 유연한 법적용이 필요하다.

뉴스1

변진환 법무법인 대청 파트너 변호사./


sualu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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