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 |
기시다 총리는 취임 초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듯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새 정권의 구호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를 위한 부유층 금융소득 과세를 논의하다가 증시 급락을 겪으며 출범 초부터 궤도 수정을 해야 했다. 기업의 임금인상을 유도해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이 33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고물가에 장기간 실질임금이 마이너스 행진을 하면서 탈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선언에는 이르지 못했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정책'도 양육비와 학자금 보조로 막대한 재정을 풀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20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총격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통일교와 자민당 간 유착관계, 작년 11월 불거진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지지율이 정권 퇴진 위기 수준인 20%대로 떨어지면서 이번 총재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상황에 몰렸다.
기시다 총리의 집권 3년간 대표적인 성과는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한 외교안보 정책에서 나왔다. 당내에서 비둘기파 성향인 5번째 크기 파벌에 속해있던 그는 정권 운영을 위해 최대 파벌 아베파나 아소파 등과 손잡고 외교안보 정책에서는 방위력 강화와 미일동맹 강화 등 우익 노선을 걸어왔다. 이를 통해 달성한 대표 성과가 2022년 12월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 개정이다. 적의 미사일 발사 거점을 파괴하는 반격 능력 보유와 무기 수출을 엄격하게 제한해온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개정 등이 주요 내용이다. 평화헌법 체제에서 유지해온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 가능) 원칙에서 벗어날 우려가 큰 정책인 만큼 안보정책의 대전환이라는 평가다. 아베 전 총리 때인 2014년 '헌법 해석' 변경에 의해 동맹국이 침략당할 때 함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한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새로운 안보정책의 길을 터줬다면 구체적인 대응책은 사실상 기시다 정권이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언론들은 '전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던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된 것도 기시다 정권의 공적으로 꼽는다. 한일관계 개선에 힘입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 실질적인 이익을 얻은 만큼 결과적으로 일본 입장에서 과한 평가는 아닌 듯하다. 아마도 기시다 총리가 임기를 한달가량 남긴 6∼7일 방한을 한 배경에는 자국민을 상대로 한일간 외교 성과를 호소하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방한 길에 오른 기시다 총리 부부 |
기시다 총리의 최대 성과인 방위력 강화 기조는 하나둘 현실로 옮겨지고 있다. 방위성이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예산으로 요구한 방위비는 8조5천389억엔(약 79조5천억원)으로 올해 예산보다 7% 넘게 증가했다. 한국 국방 예산도 훌쩍 넘어섰다. 일본의 내년도 방위비에는 반격 능력 확보를 위한 장사정 미사일 취득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소형 인공위성을 연계하고 공격형 무인기를 배치하는 사업 등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기시다 정권이 3대 안보 문서 개정 때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 관련 예산을 2027회계연도까지 2%로 늘리면서 2023∼2027년도 5년간 약 43조엔의 방위비를 확보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스스로 더는 세계 경찰이 아니라며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요구와도 맞물려있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이미 예정된 길이다.
과거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둘러싸고는 한국에서 경계감이 컸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경보음은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작아졌다. 물론 한일 양국 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 크게 개선됐음은 사실이다. 미중 패권 갈등 등 국제 환경도 달라졌다. 하지만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경구가 있다. 게다가 한반도는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은 역사를 안고 있다. 일본에서는 역사 수정주의와 우익 사관이 확산하는 기류도 뚜렷하다. 선린 우호 관계는 지향해야 하겠지만,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경계감은 여전히 필요해보인다.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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