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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믿었던 정보원 알고보니 이중첩자…배신당한 베테랑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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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불법도박 수사 한순간에 피의자로

항소심 "부정한 이익 목적 아니고, 수사 방해 정황 없어" 선고유예로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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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뉴스1) 강교현 기자 = "정보공유 차원이지, 비밀 누설은 아닙니다."

30여 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특진까지 했던 베테랑 수사관 A 씨(56). A 씨는 자신이 수사한 불법 도박 게임 사이트 사건의 피의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됐다. 범죄 피의자로 인해 한순간에 피고인 신세가 된 셈이다.

사건은 2020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당시 모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스포츠 승부 예측 게임 사이트를 이용해 불법 환전을 한 B 씨에 대해 수사 중이었다.

A 씨는 수사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근무지인 전북 익산에서 서울까지 오갔다. 하지만 수사는 A 씨의 생각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사건의 실마리를 풀 기회가 생겼다. 이 사건과 연루된 피해자 C 씨로부터 제보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C 씨는 A 씨에게 "매월 1일 서울 모처에 있는 사무실에서 전국 총판들이 모여 정산한다"고 제보했다.

뜻 밖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A 씨는 이후 C 씨와 지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통화내용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A 씨는 C 씨에게 '계좌추적용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압수수색을 위해 사전답사를 하고 얼마 뒤 압수수색을 실시한다'는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

또 A 씨는 C 씨를 자신이 근무하는 경찰서로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압수수색을 진행하기 전 C 씨의 관련 진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사를 마친 뒤에도 13차례에 걸쳐 통화를 했다.

그렇게 A 씨는 4월부터 7월까지 C 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주로 연락은 A 씨가 먼저 했다.

이들이 나눈 대부분의 대화 내용은 불법 도박사이트 관련 계좌 지급 정지 및 추적, 압수수색, 사건 관계인 조사 계획 등 수사 정보 등을 바탕으로 한 수사 진행 상황과 방향이었다.

C 씨의 도움을 받은 A 씨는 B 씨 등 불법 도박사이트 관련자들을 체포했다. B 씨는 게임산업법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실형이 선고됐다.

사건은 이렇게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B 씨가 A 씨를 공무상비밀 누설죄로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고발장에는 A 씨가 C 씨에게 수사 상황을 흘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A 씨와 C 씨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을 B 씨는 어떻게 알았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B 씨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C 씨였다. 그는 A 씨와 나눈 대화를 B 씨와 불법 사이트 총판 등에 수시로 알렸다.

조사 결과 C 씨는 B 씨에게 스포츠 승부 예측 게임 사이트의 총판 2명을 소개해 준 당사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다 해당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잃게 되자 A 씨에게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A 씨가 압수수색 사전답사를 하겠다고 한 날 C 씨는 불법 사이트 총판에 전화를 걸어 관련된 소식을 알렸다. 또 B 씨에게는 자신과 통화한 내용을 A 씨가 알게 되면 안 된다며 "모르는 척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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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A 씨는 법정에서 "수사 상황에서 정보 공유 차원에서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을 뿐이다.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를 언급했을 뿐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보 공유 차원에서 알려줬다 하더라도 관련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전달되면 수사기관에서 확보하지 못한 자료를 인멸하거나 증거를 조작할 수 있고, 허위 진술을 준비하는 등 수사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여력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경찰공무원으로서 공무상 비밀을 엄수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아 죄책이 가볍지 않지만, 초범이고 이 사건 범행으로 별다른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검사와 A 경감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C 씨가 범죄 연관성이나 잠재적인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을 인식할 무렵부터는 비밀엄수의무에 더욱 예민해야 했다"면서 "다만 피고인이 공유한 정보가 수사에 실질적으로 방해된 정황 없이 결국 관련자들의 처벌로 이어진 점, 유의미한 수사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의욕이 앞서 범행을 초래한 면이 있으나 부정한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아닌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형을 정했다"며 선고를 유예했다.

kyohyun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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