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가장 짧은 미사일도 우크라 주요도시 타격 가능
이란 전면 부인…우크라 "유럽·전세계 안보 위협할 것"
美대책 불투명…우크라 러 본토타격 지원·대이란 제재 거론
이란의 고체연료 지대지 미사일 가드르-H(가운데)와 세질 미사일(왼쪽) |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이란이 서방의 경고를 무시하고 러시아에 수백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에 어떠한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익명의 미국과 유럽 당국자들이 수개월간의 제재 경고에도 이란이 수백발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러시아로 선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CNN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같은 내용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초 러시아군 관계자 수십명이 이란에서 위성 유도 단거리 전술 탄도 미사일 '파타흐-360'(Fath-360) 등의 사용법을 훈련받고 있으며 곧 수백발의 미사일이 러시아로 선적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보도하기도 했다.
이란은 주유엔 대표부를 통해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 미사일을 보냈다는 서방 언론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수천기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이란이 본격적으로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한게 사실이라면 이번 전쟁의 양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최전선의 우크라이나군은 북한이 작년부터 러시아에 막대한 양의 포탄과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제공하면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미사일이 그려진 테헤란 시내 벽화 앞을 걷는 여성의 모습 |
소모전 장기화로 양측 모두 탄약이 고갈돼 가고 있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원조 지연으로 이런 문제가 더욱 심했던 까닭에 러시아군이 포탄 5∼7발씩을 쏠 때 우크라이나군은 한 발밖에 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신문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이란제 미사일 중 가장 사정거리가 짧은 미사일도 러시아와의 국경에서 3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하르키우 등 도시를 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란이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무기인 파타흐-360과 아바빌 탄도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각각 120㎞와 86㎞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파비안 힌츠 선임 연구원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것들은 최전선에서의 행동과 관련된 목표물이나 군사목표물, 병참거점, 지휘소, 병영, 연료저장고 등을 노리는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7일 이란 측에 탄도미사일을 러시아에 공급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하면서, 이란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한다면 유럽과 중동, 전 세계의 안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숀 세이벳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러시아에 대한 이란제 탄도미사일 전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에 대한 이란의 지원 수준을 극적으로 높이고 더 많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 해안에서 누르 지대함 미사일 발사 훈련을 진행되는 모습 |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이번 사안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사용을 승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유럽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확전 우려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왔다는 기존 태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요 7개국(G7)은 올해 3월 이란이 러시아에 미사일을 제공한다면 공동으로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고, 7월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도 같은 경고가 나왔다.
하지만 서방이 이러한 경고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12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주변국으로 확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란과의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란을 겨냥해 추가적으로 고강도 제재가 이뤄진다면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 당국자는 미국 차기 대선을 50여일 앞둔 민감한 시점인 데다, 바이든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을 절름발이 오리에 빗댄 말)에 빠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대응이 얼마나 강력할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서방 당국자들 사이에선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핵합의(JCPOA) 복원과 경제 제재 완화'를 공약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을 궁지에 몰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NYT는 덧붙였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러시아 전문가인 앤드루 바이스는 "유럽의 명백한 제재 신호를 고려하면 이란이 왜 이런 대담한 결정을 했는지가 진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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