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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문체부 “배드민턴협회, 선수단 보너스 규정 삭제... 임원 비리도 다수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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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당시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안세영(22)의 ‘작심 발언’을 계기로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문화체육관광부가 10일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대표 선수들 대부분이 현재 협회의 후원 계약 체계에 불만을 품고 있는 걸로 드러났으며, 협회의 후원 용품 ‘페이백’과 일부 임원의 규정을 위반한 성공보수 수령 등 부정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는 “국가대표 선수단 48명 중 현재까지 22명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선수단 모두 라켓과 신발 등 경기력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용품은 본인이 원하는 용품을 사용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현재 배드민턴협회는 선수들에게 후원사 용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단순 유니폼 뿐만 아니라 신발과 라켓 등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물품까지 의무 사용하게 해서 안세영이 이에 대한 불만을 품었다.

문체부에 따르면 미국, 일본, 프랑스는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으며, 덴마크는 신발 및 라켓에 대한 권리는 선수 소유임을 명시하고 있다. 중국이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용품 사용을 강제한다고 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는 후원사가 요구한 게 아니고 협회가 요구한 방식”이라며 “다른 종목 단체는 품목 별로 후원 계약을 여러 업체와 맺는 등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드민턴협회는 과거 후원 계약에 전체 후원금의 일정 비율을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배분하도록 명시했던 규정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후원사가 아닌 다른 업체와 후원 계약을 맺었던 2017년엔 전체 후원금의 20%(연 72만2000달러)를 선수들에게 배분하는 규정이 존재했으나, 2021년 6월 이 조항을 없앴다. 당시 선수단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으며 대다수 선수들이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문체부의 의견 청취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

또, 협회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 달성시 후원사가 선수에게 직접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한 규정도 변경했다. 이전 업체와 계약 땐 후원사가 선수단에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했는데, 현 후원사와 처음 계약을 맺은 2019년엔 후원사가 ‘협회를 통해’ 선수에게 지급하는 걸로 변경했고, 2023년 재계약 땐 후원사가 협회에게 지급한다고만 규정했다. 이 보너스를 선수에게 지급한다고 명시됐던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이 사실 역시 선수단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다. 선수들은 문체부 의견 청취 과정에서 “후원사 변경 전에는 보너스를 받았으나, 변경 후에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0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 관련 조사 중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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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보조금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에서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과 일부 임원들의 비리 의혹도 드러났다. 협회는 2022년부터 ‘승강제 리그’와 ‘유·청소년 클럽 리그’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연간 42억원을 지원 받았다. 김택규 회장과 그가 임명한 공모사업추진위원장(태안군배드민턴협회장)은 지난해 후원사로부터 셔틀콕 등 사업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면서 협회 직원들 몰래 후원사에 구매 금액의 30%에 해당하는 물품을 추가 후원 받기로 구두 계약을 맺었다. 1억5000만원 상당 물품을 지급 받아 지역별 물량을 임의로 배정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태안군배드민턴협회에는 4000만원 상당 용품이 지급된 반면 불과 2만7000원어치 물품을 지급 받은 지역도 있었다.

올해에도 김 회장과 협회 사무처는 후원사로부터 1억4000만원 상당의 후원 물품을 받기로 서면 계약을 체결하고 공문 등 정식 절차 없이 임의로 이를 배분하고 있으며, 사업 목적과 무관한 대의원 총회 기념품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는 “후원사와 지역 배드민턴 협회들에도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현재 파악한 상황만으로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김택규 회장이 횡령과 배임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경찰에 수사의뢰가 된만큼 수사 참고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사업들은 문체부가 대한체육회를 통해 각 종목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다른 단체들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조사를 확대할 것”이라며 “이런 문제가 많다면 문체부가 종목 단체에 직접 보조금을 교부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배드민턴협회는 임직원이 운영하는 업체와 거래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고보조금 운영관리지침’을 위반, 협회 감사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회계법인과 2021년부터 거래를 하며 약 16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또, 협회 정관에 따라 임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음에도 일부 임원이 후원사 유치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유치금의 10%를 인센티브 명목으로 받아 실질적인 성공보수를 챙기기도 했다.

게다가 40명이나 되는 협회 임원의 후원액은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김택규 회장의 후원금 2300만원이 유일한데, 이마저도 김모 전무 개인 계좌에서 회장의 이름으로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같은 기간 협회 임원이 개인 통장으로 지급 받은 직무 수행 경비, 회의 참석 수당 및 여비 등은 약 3억3000만원이었다. 여기에는 파리올림픽 출장 항공료와 숙박비, 식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문체부는 국가대표 선수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문제, 실업연맹 신인 선수 연봉 상한과 지나치게 긴 계약 기간 등 문제도 지적했다. 문체부는 국제대회 일정 등으로 아직 면담하지 못한 나머지 국가대표 선수들을 면담하고, 배드민턴협회와 각 지역 협회 등에 추가 자료를 제출 받는 등 조사를 마무리한 뒤 이달 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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