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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현장의 시각] ‘AI’ 슬로건만 남발한 삼성전자의 IFA 2024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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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너무 인공지능(AI)을 이곳저곳 가져다 붙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지난 10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폐막한 유럽 최대 IT·가전 전시회 ‘IFA 2024′에서 만난 삼성전자 생활가전(DA)사업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삼성전자 전시관 컨셉트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이라는 주제로 꾸며진 삼성전자 전시관은 ‘AI로 시작해서 AI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제품, 솔루션이 AI로 점철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을 전후로 IFA를 비롯한 주요 전시회에서 사물인터넷(IoT), 연결성을 강조한 스마트 가전 제품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아왔다. 실제 지난 수년간 삼성전자의 유럽 시장 공략 키워드는 ‘스마트홈’이었다. 삼성이 자랑하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가전기기를 연결하고, 스마트 운영체제(OS)를 탑재해 소비자의 사용 편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올해는 여기에 AI 기술을 붙여 ‘AI홈’이라고 명칭을 바꿨다.

다만 삼성전자가 강조한 AI 가전을 진정한 의미의 AI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부 제품의 경우 AI 알고리즘을 적용해 더 편리한 사용 경험을 적용하지만, 냉장고나 세탁기 등을 비롯한 상당수는 기존 스마트 가전 제품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음성 명령 기반의 기기 제어, 혹은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통해 특정 기능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새로운 것처럼 AI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마트싱스 플랫폼에 연결되어야만 온전히 AI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제품군도 적지않다. ‘온디바이스(내장형) AI’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 PC처럼 하드웨어에 AI 연산이 가능한 부품이 탑재돼 기기 자체적으로 AI 연산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해당 제품이 연결된 플랫폼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AI 가전이 아니라 AI 기술을 지원하는 플랫폼에 연결된 가전제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삼성전자가 AI 가전이라는 슬로건을 남발한다는 의구심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경영진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AI 가전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남발한다는 내부 비판도 있다”며 “물론 법무팀을 비롯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 법적으로 과대 광고 논란이 없도록 조심하고 있지만, 올해 IFA에서는 과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밀레, 보쉬 등 유럽 현지를 주름 잡고 있는 현지 가전 기업들의 전시관을 둘러보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밀레나 보쉬의 경우 에너지 절감 기술이나 구동 방식 등에 일부 AI 기술을 활용했지만, AI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보쉬 연구개발팀 관계자는 보쉬와 삼성전자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소비자 수요에 대한 접근 방식을 꼽았다.

그는 “보쉬는 소비자들에 특정한 기술을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기업이 소비자들의 삶에 적응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IFA에서 본 삼성은 AI라는 슬로건을 내놓고, 소비자들이 그 기술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제한다. 그것이 삼성전자와 유럽 기업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수요에 대한 삼성전자의 이 같은 자기중심적 방식은 전시 트렌드를 파악하는 수장의 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IFA 2024 행사가 개막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삼성전자 전시장 외에 타 기업 전시장은 단 하나도 점검하지 않은 상태로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삼성전자의 AI 가전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패기롭게 외쳤다.

유럽의 터줏대감인 밀레, 보쉬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추격을 넘어 일부 제품군에서는 추월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TCL 등 중국 기업들의 선전은 한 부회장의 관심사 밖이었다. 이는 IFA 2024 개막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TCL, 밀레 등 경쟁사 전시장을 둘러보고, 향후 개선 방향과 사업 전략, 반성할 점까지 파악해 언급한 조주완 LG전자 사장의 행보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대목이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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