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8 (수)

이슈 국방과 무기

中 시위대 포위한 美 대사관에 갇혀 전투식량 먹으며 버틴 새서 前 대사 별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999년 미군이 옛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성난 중국인 시위대, 베이징 미국 대사관 포위

당시 대사 “우리는 사실상 인질로 잡혀 있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의 옛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으로 중국에서 대규모 반미 시위가 일어났을 당시 주중 미국 대사였던 제임스 새서 전 연방 상원의원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새서는 성난 중국인들에 의해 포위된 미국 대사관 안에 사실상 인질로 갇혀 있었던 경험을 나중에 털어놓아 화제가 됐다.

11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새서는 지난 10일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채플힐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유족은 고인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밝혔다.

세계일보

1996∼1999년 주중 미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새서(1936∼2024) 전 연방 상원의원.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36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난 고인은 인근 내슈빌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고교 졸업 후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해 1958년 학사 학위를 땄고 이후 같은 대학 로스쿨에 들어가 1961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1970년 테네시주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던 정치인 앨버트 고어(76)의 선거운동 캠프에 합류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76년 11월 민주당 공천으로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후보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때부터 총 3선을 기록하며 1995년 1월까지 18년간 상원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1994년 11월 4선 도전에 실패하며 야인이 된 고인은 잠시 정계를 떠났다가 1996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중국 주재 미국 대사라는 요직에 발탁됐다. 고인이 베이징에 있는 동안 미·중 관계는 지금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9년 5월7일 베오그라드(현 세르비아 수도)에 있던 옛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이 미군 폭격기의 오폭을 받으며 양국 간에 험악한 기류가 형성됐다.

세계일보

코소보 전쟁 도중인 1999년 5월7일 미군 폭격기의 오폭으로 무너져 내린 옛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건물 모습. 이 사건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대규모 반미 시위가 벌어져 주중 미국 대사관이 나흘간 성난 중국인들에 의해 포위를 당했다. BBC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시 발칸반도에선 코소보 전쟁이 한창이었다. 1998년 발발한 이 전쟁은 옛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인 코소보가 자치권을 요구하자 유고슬라비아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공격하며 벌어졌다.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와 무슬림 신도가 많은 코소보는 문화적 이질성 때문에 전부터 갈등이 잦았다. 이에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코소보를 돕고 나섰다. 나토군은 1999년 3월부터 6월까지 세르비아를 상대로 공군기를 이용한 폭격 등 공중 작전을 전개했는데, 그 와중에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미군 폭격기가 떨어뜨린 폭탄이 대사관 건물에 명중하며 중국인 3명과 세르비아인 14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미군이 오폭이었다고 해명하고 클린턴 대통령도 직접 중국에 사과했으나 중국에선 반미 감정이 들끓었다. 1999년 5월8일 성난 중국인들이 베이징에 있는 미국 대사관 건물을 사실상 포위했다. 일부는 돌이나 화염병, 페이트를 던졌고 이에 대사관 유리창이 박살나기도 했다. 중국 공안(경찰)이 시위대를 막긴 했으나 대사관 보안 책임자는 대사이던 고인에게 “저지선이 뚫리고 중국 시위대가 대사관에 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고인의 지시에 따라 대사관 직원들은 서둘러 중요한 서류와 보안 장비를 폐기했다.

중국인들의 시위는 1999년 5월11일까지 나흘간 이어졌다. 그 기간 대사관 안에 갇혀 지냈던 고인은 훗날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이 사실상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며 “우리는 사무실 바닥에서 잠을 잤고, 식사는 해병대원들의 전투식량으로 했다”고 술회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