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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이슈 미술의 세계

옛 서울역사에 펼쳐진 대숲, 미술관에 들어온 수영장…연휴에 가볼 만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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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문 여는 미술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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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맞는 옛 서울역사에서 펼쳐지는 한국화 전시, '생명광시곡, 김병종'에 나온 '생명의 노래'(왼쪽), ' 송화분분'. 사진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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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 연휴 서울에 머무는 이들, 서울에 올 이들을 위해 연후에 문 여는 미술관 전시 소개합니다. 미술관 이름 클릭하시면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포털 사이트에서 보시는 분들 위해 홈페이지 주소 함께 표시했습니다). 연휴 기관 전시장별 문 여는 날은 한눈에 볼 수 있는 표 참조해 주세요.



100년 전 문 연 옛 서울역사에 대나무숲 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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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광시곡: 김병종'이 열리는 문화역서울284. 사진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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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가장 붐빌 서울역 옆 옛 서울역사는 1925년 경성역으로 문 연 이래 100년 가까이 한국의 사회적 격변과 함께했다. 복합문화공간이 된 문화역서울284(https://www.seoul284.org/main)에서는 한국성의 의미를 탐구하는 ‘K-판타지아 프로젝트’를 시작, 첫 작가로 김병종(71) 서울대 명예교수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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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신작 ‘풍죽(風竹)’ 연작이 전시의 서막이다. 중앙홀을 지나 3등 대합실엔 종이에 송홧가루 섞은 물감으로 그린 ‘송화분분’이, 플랫폼이었던 복도에는 한 송이 꽃이 큰 화폭을 꽉 채운 ‘생명의 노래’가, 1ㆍ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에는 골판지에 큰 붓 휘둘러 그린 ‘상선약수’까지 김병종의 ‘화첩 인생’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 마지막 그림은 학창 시절인 1980년 그린 대장장이들의 일하는 모습, 당시 전국대학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기작 ‘바보예수’ 연작도 함께 전시됐다. 귀빈실ㆍ역장실에는 그가 모은 붓, 전각, 곁에 두고 보는 추사 김정희 편액과 조선 민화 병풍 등을 볼 수 있다. 회화 150여점, 아카이브 자료 200여점이 공개된 전시는 10월 24일까지.



미술관에 수영장이 들어왔다…전시장에 숨겨둔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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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드라그셋의 '스페이스(Spaces)'에 전시된 '아모레퍼시픽 풀(Pool)'.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하듯 물 빠진 수영장에는 고대 조각상을 닮은 흰 남성 인물상들이 제각각 존재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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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조금 내려가면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https://apma.amorepacific.com/index.do)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거대한 건물의 지하에 수영장부터 140㎡(42평) 집, 레스토랑, 실험실을 닮은 산업용 주방까지 설치됐다. 북유럽 출신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 ‘스페이스(Spac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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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을 연상시키는 흰 물감을 들이붓는 남성 조각상이 포함된 '무제(스튜디오)' 옆의 드라그셋과 엘름그린.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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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엘름그린(63)과 잉가 드라그셋(55)은 1997년 덴마크의 한 갤러리 벽에 흰 페인트를 칠하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12시간 동안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화이트 큐브라는 전형적 전시장 공간을 해체한 이 프로젝트처럼 공간의 맥락을 부수며 세상의 질문을 끌어들이는 게 그들의 장기. 2005년 텍사스 마파의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세웠고,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북유럽 국가관을 어느 수집가의 집으로 바꿔 특별상을 받았으며, 2015년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공항으로 바꿨다. 관객들이 '난 누구, 여긴 어디?' 의아해 할 만한 전시를 내놓는 이들은 “미술관은 캔버스이자 재료이자 작업 그 자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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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실제 레스토랑을 옮겨놓은 듯한 '더 클라우드(The Cloud)' 안에 실물 크기 극사실주의 여성 인물상 '대화'가 있다. 혼자 앉아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습이다. 대화 영상은 작가들이 쓴 대본을 토대로 연기자가 촬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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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는 놀이터에서 볼 법한 뺑뺑이를 타는 강아지 인형이 놓였다. “우울하고 외로워서 켰다가 강아지가 빙빙 도는 모습을 보다가 더 우울해지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은유”라는 게 드라그셋의 설명. 매표소 부근의 도네이션 박스도 작품이다. 달러나 원화 지폐도 있지만 신던 운동화 한 짝, 구겨진 소화제 박스도 들었다. “이 전시 하느라 돈이 많이 들어 아모레퍼시픽에서 기부함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돈 대신 온갖 걸 넣었다는 이야기”라는 게 이들 특유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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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의 영화와 봉준호의 '기생충'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그림자 집(Shadow House)'. 거실ㆍ주방ㆍ침실ㆍ서재ㆍ화장실까지 갖춘 집에서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추측하는 건 관람객의 몫이다. 빈집에 홀로 남은 소년 모습의 극사실조각이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나는(I)'이라고 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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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물 없는 수영장. 홀로 걸터앉은 소년, 라이프가드, 창 앞에 서서 구름을 바라보는 소년 등 제각각 자기 세계에 몰두해 있다. “성장이란 어렵고 영웅적인 일, 특히 많은 정보에 노출된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게 작가들의 설명이다.

레스토랑 입구에서는 메뉴판도 한 번 들여다보길 권한다. “모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그렇듯 거품과 연기만 있다”는 유머를 구사해뒀다. 주방에는 새 뼈, 새의 커다란 알, 그리고 둥지 안에 새에게 딱 맞춤한 작은 크기의 책 『새가 되는 법』이 놓였다. 숱한 자기개발서처럼, 곧 식재료가 될 새마저도 좋은 새가 되는 법을 책으로 배우는 장면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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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마파, 사막 한복판 대로변에 신기루처럼 지은 '프라다 마파'(2005). 텍사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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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해 사막을 두 시간 달려 이들의 출세작 ‘프라다 마파’를 보러 갔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서 있는 흙벽돌 명품 매장은 이제 가족 관광객들이 단란하게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 인근 마파에는 미니멀리즘의 거장 도널드 저드가 세운 미술관이 있다. 저드의 의도와 달리 매장의 고급스러운 장식 요소가 된 미니멀리즘의 좌절을 보여준다는 도전적 작업이었다. 제작 당시 프라다로부터 예산이나 작업 지원은 없었다. 다만 인테리어 디자인을 위한 색상 코드 정보, 또 미우치아 프라다가 직접 골라준 2005년 시즌의 핸드백과 하이힐을 제공받아 '가짜 매장'을 꾸밀 수 있었다. 드라그셋은 “다양한 생애를 살게 된 작업이다. 제작 당시에는 비밀처럼 남을 줄 알았는데 인스타그램이 생기고 비욘세가 인증샷을 찍고 ‘가십걸’이라는 틴에이저 드라마에 나오고 급기야 애니메이션 속 심슨 가족이 가는 장면까지 나왔다. 우리가 내놓은 아이가 반항기를 지나 이제는 알아서 잘 살게된 것 같아서, 떠나보내야 하는 작업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디지털 세계를 옮겨온 듯한 공간을 체험하며 작가들이 곳곳에 숨겨둔 냉소적 유머를 찾아보길 권한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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