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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바닷속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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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서울=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 전장의 확대

고대부터 사람들은 하늘과 바닷속을 전장으로 만드는 상상을 했다. 이카로스의 전설이 탄생한 곳은 이탈리아에 있던 그리스 식민도시 쿠마에였다. 이곳은 모든 그리스 식민지 중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곳으로 그만큼 위험했다.

그리스인들은 바위산으로 막힌 산 안쪽 지역에 터널을 파서 거주지를 세웠다. 바위산과 바다로 막힌 요새도시, 해안 바깥쪽 섬에 또 하나의 식민도시가 있었다. 하늘을 날아서 그곳으로 갈 수는 없을까? 그것이 이카로스의 전설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정말로 쿠마에의 기술자들이 행글라이더나 기구 같은 것을 구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설에 의하면 이카로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갔다가 깃털을 붙인 밀랍이 녹아 추락한다. 그가 추락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지역이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인데, 이곳은 지금도 그리스 고대 신전이 그리스보다 완벽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한 그리스 식민지였다. 최북단의 요새와 이탈리아 지역에 있는 최대의 그리스 식민지. 이 둘 사이에 하늘이 있다.

이카로스의 비행이 막연한 꿈이었다면 바닷속의 전쟁은 보다 현실적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엔지니어였고, 그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설계들이 전쟁 도구였다. 그중에는 잠수장비도 있다. 그는 배에서 호스를 통해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와 잠수복을 설계했다. 원리와 외형은 근대의 잠수장비와 유사하다. 잠수부는 긴 창을 들고 바다 밑을 걸어 적의 배밑에 접근해 구멍을 뚫는다.

잠수정에 관해서는 다빈치보다 더 오랜 전설이 있다. 다빈치도 이 전설을 알았던 것이 틀림없다.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잠수정을 타고 바다 밑으로 들어갔었다는 전설이다. 이건 확인 불가능한 전설이고, 잠수함이 실용화되지도 않았다. 다만 잠수정의 아이디어는 이카로스의 날개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진지하게 고민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철도가 등장하기 전에 바다는 대량으로 병력과 물자를 이동시킬 수 있는 유일하면서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기원전 14세기에서 12세기, 청동기 시대에 고대의 바다 민족들은 지중해를 건너, 크레카, 이집트, 팔레스타인과 소아시아를 침공했다. 이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이들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길이 정해져 있는 육지와 달리 드넓고 긴 해안을 경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이킹이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병력이나 보급물자를 실은 수송선을 격침한다면 침략전쟁을 단숨에 끝낼 수 있다. 한니발을 지원하러 오던 카르타고 지원부대가 침몰하지 않았더라면 한니발은 로마를 정복했을 수도 있었다. 바다 밑에 숨어 있다 이런 수송함대를 격침한다면 전쟁의 승부를 일거에 바꿀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꿈의 무기, 진정한 게임체인저였다.

◇ 바다의 늑대


아무리 절실한 꿈의 무기라도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잠수함을 제작하는 기술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최초의 잠수함은 미국 남북전쟁 때 남군이 찰스턴 항구의 봉쇄를 풀기 위해 건조했던 헌리호였다. 엄밀히 말하면 최초의 잠수함이라기보다는 실전에 투입돼 최초로 제 역할을 한, 즉 적선을 격침한 최초의 잠수함이었다.

헌리호는 선수에 장착한 어뢰로 북군 함선 한 척을 격침했지만, 자신도 귀로 중 침몰하고 말았다.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격침할 때의 폭발 충격으로 헌리호도 피해를 입었거나 혹은 기기고장이나 조작실수로 상승이 불가능해져서 침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엉성했던 헌리호의 비극적인 성공은 잠수함의 발전에 놀라운 동력을 불어 넣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반세기 후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잠수함은 맹활약을 시작한다.

잠수함의 역할은 적 전함 공격, 정찰, 잠입 등 다양하지만, 20세기 두 번의 세계 대전의 결과를 바꿀 뻔했던 기능은 전략적 기능이었다. 양차 대전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미군의 물자지원 덕에 승리할 수 있었다. 군수물자뿐 아니라 생필품, 식량까지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다.

대서양을 가득 채운 이 대규모 수송선단을 독일의 유보트가 공격했다. 보통 유보트의 활약이라고 하면 2차 세계대전 때를 생각하지만, 1차 대전 때부터 유보트의 활약은 공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이 대잠작전이나 기술개발에 소홀했던 건 미스터리 중 미스터리이다. 물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고 기술적 능력의 한계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 기술에서도 가능한 전술의 개발에 소홀했던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2차 대전 중에 유보트의 무적시대를 저지한 건 잠수함 탐지 기술이 아니라 대잠전술이었다.

반면에 독일은 독일대로 유보트에 전쟁의 승부를 거는 듯하면서도 노력이 왜곡되었다. 해저전력이 아닌 전함, 구축함 같은 해상전력의 재건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는 바람에 유보트 생산이 계획처럼 되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연합군의 대잠전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보트의 기술개발에도 소홀했는데, 일종의 나비효과였다. 연합군이 대잠전술 개발에 소홀했던 것이 엉뚱하게 유보트 발전에도 저해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게 세상의 아이러니이다.

막상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유보트의 활약은 모두의 예상을 넘었다. 대서양을 건너는 수송선들은 유보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신문기사, 선전영화는 공포영화 수준이었다. 사슴이나 물소 떼가 이동하다가 늑대나 사자 무리를 만나는 격이었다. 이 맹수들은 보이기라도 하지만 물 밑에서 잠행하는 유보트는 탐지 불능이었다. 이들에게 걸리면 제물처럼 희생양을 바치고 맹수들의 사냥터를 떠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호위함대가 있었지만 모든 수송선을 호위할 수는 없었다. 호위함대가 있었도 사전 탐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니 경호가 쉽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최초의 공격이 감행된 후에 유보트가 있다고 짐작되는 것에 몰려들어서 폭뢰를 투여하는 것이었다. 이 공격은 성공 가능성도 낮았고, 잠수함을 공격하는 함정이 당할 수도 있었다. 독일은 환호했고, 연합군은 절망했다.

◇ 쉽게 얻는 승리는 없다

속수무책, 일방적 승리, 게임체인저…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좋아한다. 그러나 창과 화살로 무장한 군대와 총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와의 싸움이 아닌 이상, 그런 일방적인 승리는 없다.

유보트가 엄청난 전과를 올리던 시절에도 수송선 사냥이 땅에 떨어진 열매 줍듯이 쉬운 건 아니었다. 넓은 바다에서 수송선을 탐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늑대 떼 전술을 사용했다고 하지만, 발견을 해도 유보트는 속도가 너무 느렸고, 조류의 방해로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어뢰의 명중률은 생각보다 낮았고, 어뢰가 떨어지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명중률을 높이는 유도어뢰를 개발했지만 명중률이 더 떨어졌다.

유보트 승무원의 생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악했다. 영화에서는 좁아도 침대에 누워서 자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로 벽면에 마련된 사병을 위한 설계상의 침대는 4~6개에 불과했다. 침실로 애용된 제일 넓고 쾌적한 공간은 어뢰실이었다. 어뢰를 한 발 소모할 때마다 한두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어뢰를 다 소모하면 어뢰실은 20명의 장정이 북적거리는 침실로 변했다.

이 좁디좁은 공간을 습기와 더위와 역겨운 악취가 가득 채웠다. 잠수함이 요동하면 변기에 담아둔 오물이 쏟아지고, 꼭꼭 밀폐된 공간에서 땀냄새, 디젤 냄새가 섞여서 인간이 상상도 못 할 악취가 선내에 가득 찼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겪는 폐소공포증은 사치에 가까웠다. 전투가 벌어지고 폭뢰 공격이 시작되면 암흑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공정한 서술이 불가능하다. 다른 전장에서는 사지에서 빠져나온 생존자가 있지만 한번 침몰한 유보트는 생존자가 없다. 바다에서 소식이 끊어지면 끝이었다. 어떤 일로 침몰했는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생과 공포를 겪었는지, 증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쟁사를 보면 사람들은 속수무책의 승리를 열망하고 열광한다. 무적의 철갑기병, 무적의 잠수함, 이런 신화들이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이해, 아니 사람과 사회현상에 대한 잘못된 이해, 혹은 과도하게 편안함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쉬운 승리는 없다. 쉽게 거두는 것처럼 보이는 승리, 일방적인 승리는 더 많은 고통과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1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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