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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이슈 미술의 세계

아버지는 강제로 입에 '고기'를 넣었다…그렇게 식물이 된 딸 [추석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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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연휴의 절반이 지났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가을과 잘 어울리는 소설 한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서사의 재미는 물론, 사색하는 즐거움을 일깨워 줄 명작 세 편을 추천한다. 모두 서늘하고 고독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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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스미스 장편『가을』. 브렉시트 이후 혼란한 영국 사회를 담아냈다. 사진 민음사





브렉시트 그 이후…쓸쓸한 영국 사회 들여다보고 싶다면



영국 작가 앨리 스미스의『가을』은 브렉시트 후 영국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담아낸 장편 소설. 소설은 80세가 넘은 노인 다니엘, 다니엘과 우정을 나눈 십 대 소녀 엘리자베스, 시간이 흘러 32세의 미술사 강사가 된 엘리자베스의 일상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기다리는 다니엘과 사회인이 된 엘리자베스의 일상은 독거노인과 비혼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장치. 이들의 이야기는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이민자 혐오가 퍼지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낙서가 늘어나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도 씁쓸함을 남긴다.



폭력에 맞서 나무가 된 여자



한강의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는 평범한 주부 '영혜'가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시작된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육을 먹는 꿈을 꾼 영혜는 돌연 육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냉장고에 있던 고기를 모두 버린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못마땅하게 본 아버지는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는다. 영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나뭇가지처럼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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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가 한강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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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 아버지에 맞서 영혜가 택한 길은 식물이 되는 것. 하루하루 말라가던 영혜는 자신을 나무로 여기게 된다. 햇빛과 물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듯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채식주의자』는 사회적 폭력과 자아의 충돌을 탐구한다. 영혜의 채식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더는 세상의 규범에 맞춰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 책은 저자 한강에게 2016년 영국의 최고 권위의 문학상 부커상의 영예를 안겼고, 최근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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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강의 부커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대형 서점에 한강의 작품을 모아 놓은 코너가 생겼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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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따르지 않는 이의 이름, 이방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뫼르소는 장례를 치른 이후 우연히 소동에 휘말려 권총으로 한 아랍인을 살해하게 된다. 소설 중반부에서 뫼르소는 살인죄로 체포되고 재판을 받는다.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한 소설은 뫼르소의 살인과 재판을 거쳐 사형 집행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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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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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리 사회가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이방인은 단지 외부인이라는 의미로 국한되지 않는다. 통념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이는 모두가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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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이방인』표지. 사진 민음사



뫼르소는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나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엄마를 그리워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을 이방인으로 만든다. 장례 직후에는 코미디 영화를 관람하고 같은 건물에 사는 포주 남자와 어울려 패싸움을 벌인다.

재판장에서는 그가 장례를 치른 직후 코미디 영화를 보고 원나잇을 하고, 포주와 어울려 방탕하게 지냈다는 점이 여러 번 언급된다. 사람들은 뫼르소의 범죄 동기보다 장례 직후의 기행에 더 관심을 갖는다. 살인보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코미디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는 듯.

카뮈는『이방인』을 통해 보편적 기준에 부응하지 않은 인간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보여준다. 독자들에게는 이 사회가 '다른 인간'을 취급하는 방식에 동의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뫼르소가 장례식에서 통곡하며 슬픔을 연기했다면 그 끝은 달랐을까? 그가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면 정당방위가 인정됐을까? 그렇다면 그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걸까, 아니면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걸까?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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