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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문화재 보존과 박제의 차이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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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7월27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2024 파리올림픽 펜싱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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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를 총괄하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인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다. 국보, 보물의 지정과 유지, 보수 등의 실물 관리뿐 아니라 유네스코 유산 등재 같은 정책 분야까지 말 그대로 문화재 전반을 관장하는 곳이다. 노후나 화재 등으로 문화재급 건물을 수리나 복원해야 하는 경우, 관청의 일관된 원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형·그·대·로’이다.



방화로 소실됐다가 2013년 복원된 숭례문의 재건과정을 짚어보면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화재 후, 발굴 조사와 옛 자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반을 이전보다 50㎝가량 낮추고, 1층 마루는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꾸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동쪽 성곽 53m와 서쪽 성곽 16m 구간을 추가로 복원했다. (다만 대한제국 시기에 허문 대부분의 한양 성곽은 간과하면서, 굳이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부분은 ‘원형’이라는 작위적 해석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처럼 한국전쟁 직후 중수되어 수십년 자리를 지키던 건물이 훼손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이전 시대의 자료를 뒤져 최대한 과거로 돌아가려는 일종의 ‘회귀본능’이 작용하는 셈이다. 왜 그럴까?



한국의 현대도시발전사에서 항상 충돌하고 갈등하는 두 가치는 바로 ‘개발’과 ‘보존’이다. 도시화의 현기증 나는 속도에 취해 과거 흔적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버린 불도저식 철거·재개발이 난무하다 보니, 최소한 문화재라도 옛날 그대로 보존하려는 상대적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문화재를 보존하자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과연 옛 모습 그대로 보존만 하는 것만이 정답인가는 다른 차원이다. 당대 최고 장인을 총동원해 몇백년 전 모습과 최대한 가깝게 복제된 숭례문, 방화를 당한 쓰린 기억 때문에 출입은 통제되었지만 그나마 멋진 조명으로 도심지의 고풍스럽고 멋진 장식품이 됐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각적 ‘도시조각품’이 하나 더 필요했던 걸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탄소중립 친환경, 도시를 활용한 경기와 개폐회식 등 여러모로 특별했던 올림픽이지만 한국인들에게 가장 생소한 부분은 분명 프랑스인들이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태도였다. 에펠탑, 베르사유궁 등을 배경으로 한 야외경기장, 약간만 손본 오래된 경기장 등, 으레 멋지고 큼직한 새 경기장을 엄벙덤벙 지어온 타국 올림픽과 분명 달랐다. 그중 많은 이의 눈길은 끈 곳이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린 ‘그랑팔레’였다. 한반도에 덕수궁 석조전이 지어지던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에펠탑과 함께 건설됐던 거대한 유리 지붕의 다목적 행사장인 그랑팔레는 세기를 관통해 수많은 행사를 주최했던 곳이고 그때마다 보수와 개조를 함께해온 곳이다.



우리의 목조건물과 다르게 화재와 파손에 강한 석조건물이니 쉽게 개조해서 재사용할 수 있지 않았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건물의 재활용과 개보수를 위한 수많은 건축가의 제안과 당국의 열린 시도를 알게 되면 (앙드레 말로 문화장관 시절,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이 건물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려 하기도 했다), 무려 국가문화재 지정 건물이 2024년 올핌픽 경기장으로 변신한 이유도 알게 된다. 문화재는 보존되어야 마땅하지만, 건물은 사용되지 않고 보존만 되면 박제품이 된다. 예전의 원형 위에 오늘의 가치가 끊임없이 더해져야 ‘살아있는’ 문화재가 된다. 건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 또한 문화재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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