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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19년 만에 돌아온 ‘김삼순’…2030은 왜 옛 드라마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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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공개한 ‘내 이름은 김삼순’ 리마스터링 버전 포스터. 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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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가 19년 만에 돌아왔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MBC)은 통통한 몸과 촌스러운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지만 누구보다 일과 사랑에 진심인 여성 김삼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최고 시청률 50%를 넘기며 신드롬급 인기를 모았다. 19년이 흐른 지금, 유튜브 몰아보기 콘텐츠 등에서 다시 인기를 끌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리마스터링 버전이 등장한 것이다. 옛 드라마를 다시 찾는 건 ‘…김삼순’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최근 들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드라마를 찾는 시청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웨이브는 지난 6일 ‘내 이름은 김삼순 2024’를 공개했다. 명작 드라마를 2024년 버전으로 신작화하는 ‘뉴클래식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웨이브는 “‘여자 주인공은 예쁘고 가녀리다’라는 미적 공식을 깼고, 감정을 속에만 담지 않고 뿜어내는 사이다를 터뜨렸으며, 다 가진 남자 주인공 앞에서도 기세등등 당당했던 삼순이를 많은 이들이 아직도 기억한다”고 이 드라마를 다시 공개하는 이유를 밝혔다. 김삼순을 연기한 배우 김선아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순이는 제 마음속 깊이 자리한 오래된 친구 같은 캐릭터다. 예전엔 삼순이가 (시청자들에게) 속시원하게 무언가를 대신 해주는 언니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나 같고 내 친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삼순 2024’는 공개 첫날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신작화 작업엔 원작 연출자 김윤철 감독이 직접 참여했다. 기존의 16부작을 8부작으로 축약해 곁가지로 뻗은 이야기를 축소하고 김삼순의 일과 사랑에 집중했다. 툭하면 소리 지르고 때때로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자 주인공 현진헌(현빈)의 모습처럼 당시엔 통용됐지만 지금 감수성에 맞지 않는 대사와 행동 등은 대폭 덜어냈다. 대표 주제가인 클래지콰이의 ‘쉬 이즈’(She is)는 가수 이무진과 쏠이 시티팝으로 재해석해 다시 불렀다.



이런 시도의 배경에는 옛 드라마에 대한 높은 수요가 있다. 유튜브에서는 ‘…김삼순’ 말고도 ‘커피프린스 1호점’ ‘궁’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드라마와 시트콤을 짧게 요약한 콘텐츠가 인기다. 문화방송(MBC) 유튜브 채널 ‘옛드: MBC 옛날 드라마’는 18일 기준 39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궁’의 한 요약 영상 조회수는 2500여만회에 이르고, ‘…김삼순’ 요약 영상도 50만∼1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인기 콘텐츠를 5분 안팎의 영상으로 축약해 보여주는 ‘오분순삭’ 채널에 올라온 ‘거침없이 하이킥’ 영상 조회수는 100만∼500만회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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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등장인물들. 문화방송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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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드라마를 다시 찾는 이들은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신작 콘텐츠보다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는다. 직장인 오아무개(36)씨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봤는데, 여자 외모를 품평하는 대사들은 거슬렸지만 옛날 패션이나 감성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 ‘보고 또 보고’는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시를 읊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옛 드라마와 시트콤을 즐겨보는 이아무개(30)씨는 “지금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재밌게 보고 있다”며 “요즘 프로그램은 주제가 무겁고 무언가를 저격하는 게 많아서 편하게 보기 어렵다. 옛날 시트콤은 순수한 방식으로 웃기고 가볍게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특히 20~30대 사이에서 옛 드라마의 인기가 높은 데는 어릴 적 마냥 재미있게만 봤던 드라마가 성인이 된 뒤 새롭게 다가온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등장인물과 비슷한 나이대가 되어 다시 보니 뒤늦게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삼순’ 유튜브 요약 영상에는 “어릴 땐 잘생긴 삼식이(현빈)가 멋져 보였는데, 나이 들고 보니 삼식이는 잘생긴 ‘똥차’였다. 나이 서른에 유학파고 실력 탄탄한 삼순이가 멋진 어른인 걸 깨달았다” “저 땐 삼순이가 아줌마로 느껴졌는데. 그 나이 되고 보니까 아직도 너무 어린 나이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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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궁’ 등장인물들. 문화방송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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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2000년 즈음의 레트로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에 더해 자극적인 신작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이 옛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오티티 오리지널 드라마는 폭력적·선정적인 작품이 많고 도파민 과잉을 유발한다. 지상파나 케이블 드라마는 예전만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잘 만든 작품으로 여겨지는 과거 드라마들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고 말했다.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든 볼 수 있는 환경도 배경으로 꼽힌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릴 적 좋아했던 콘텐츠를 다시 보고자 하는 욕망은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과거에는 티브이에서 방영해야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옛 드라마를 보고 싶어도 못 봤다. 반면 지금은 오티티 등을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환경이 뒷받침됐다”고 설명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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