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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삶과 추억] “꿈은 진보, 체질은 보수”…보혁 넘나든 시대의 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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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80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정치를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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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양 진영의 교류에 애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6일 전했다. 향년 90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 군이 서울대 법학과에 부정 편입학하자,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민국일보를 거쳐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를 맡기도 했다.

이후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고인은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당시 두 딸이 운동권 학생이라는 점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엔 노동부 장관(1993~1994년)을 지냈다. 이후 5년간 호남대 객원교수로 정치 문제를 강의했다.

보수 정권 핵심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을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했고, 유족에 따르면 한 시인은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쓴 적도 있다.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국회에서 임수경씨의 방북과 관련, “방북자 구속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차원이 아니라 트래픽 컨트롤 즉 교통 정리적 차원”이라고 발언했고, 노동부 장관 재직 시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장서가와 독서가로 유명했던 고인은 ‘일하는 사람들과 정책’(1995), ‘언론 정치 풍속사-나의 문주(文酒) 40년’(2004), ‘문제는 리더다:정관용이 묻고 남재희, 김종인, 윤여준, 이해찬이 답하다’(공저, 2010),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2014),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2006), ‘진보 열전-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2016), ‘시대의 조정자: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2023), ‘내가 뭣을 안다고: 잊혀간 정계와 사회문화의 이면사’(2024)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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