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언론·인권단체·국제법 전문가들 국제법 해석
"슈퍼마켓·이발소 등 일상에서 터져 민간인 무차별 살상"
일상의 공간인 시장에서 갑자기 터진 '이스라엘 부비트랩' 삐삐 [AF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레바논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낳은 무선호출기(삐삐)와 소형무전기(워키토키) 동시다발 폭발 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이 지목된 가운데 이런 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을 무선호출기를 '부비트랩'으로 사용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불법적이며 용납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부비트랩은 피해자의 행동에 따라 작동하는 살상 장치로 미끼를 이용하는 것들이 많다.
가디언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부비트랩이 대량 살포됐던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상황에서 부비트랩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 조약이 발효됐으며 이스라엘도 여기에 서명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이 거론한 국제 조약은 무력분쟁과 관련한 다수 국제인도법에 반영돼 있다.
미국 국무부가 국제인도법들을 모아 작성한 '전쟁법' 매뉴얼에서는 부비트랩 사용에 대한 규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민간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부비트랩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민간인 보호를 위한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
부비트랩은 특정 군사 목표를 겨냥하지 않는 방법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우발적인 민간인 인명 손실을 초래하는 형태로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정확한 표적을 겨냥한 대테러 작전이 아니며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이나 외교관, 정치인 등도 겨냥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과거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공격한 러시아에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우방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추론이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전투지역이 아닌 슈퍼마켓이나 이발소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느닷없이 발생했다는 점 때문이다.
베이루트서 거행된 '삐삐 폭발' 사망자 장례식 [EPA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일상에서 사용하던 통신기기를 공격 수단으로 삼아 민간인과 무장단체 구성원을 구분 짓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으며, 이 때문에 사상자 중에는 어린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장인 라마 파키도 이런 점을 거론하며 "국제인도법은 민간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형태의 부비트랩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키 국장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폭발물 장치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며, 특정 군사 표적을 겨냥할 수 없는 공격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민간인과 군사 표적을 구별하지 않고 공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공격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 통신도 국제인도법 전문가인 루이지 다니엘레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학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사태가 두 가지 전쟁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다니엘레 교수는 아나돌루와 인터뷰에서 적대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지시한 것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로마 규정 제8조 2항에 저촉된다고 밝혔다.
또 명백히 과도한 민간인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공격을 지휘한 것도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최근 ICC가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공격한 러시아 군사령관을 기소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번 사태가 전투지역이 아니라 슈퍼마켓이나 이발소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장소를 공격한 점을 거론하며 설사 일부 표적이 합법적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공격 양식을 볼 때 모든 기준에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공격 목표는 일부 특정했을 수 있지만 민간인 피해가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니엘레 교수는 "국제법에 따르면 합법적인 표적이라도 민간인을 구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예방조치를 했어야 하고 민간에 과도한 피해가 예상되면 공격을 취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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