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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베이징 비키니’와 3단 폴더블폰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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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인 남성이 티셔츠를 걷어 올려 배를 드러낸 채 베이징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배 위로 티셔츠를 걷어올리는 중년 남성들의 차림새에는 ‘베이징 비키니’란 별칭이 붙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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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2002년 여름, 어학연수를 위해 처음 중국 베이징에 왔다. 윗옷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저씨들이 많은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중국어로는 상의를 벗었다는 의미로 ‘광방쯔’라고 한다. 덥고 건조한 날씨에 조금이라도 체온을 낮추기 위한 피서책인 듯했다. 거리는 물론 식당, 술집, 미장원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 민망한 패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작 웃통을 벗은 본인은 물론 주변 중국인들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수백년 전 중국 그림이나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등에 이런 패션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꽤 오랜 문화적 풍습인 듯하다. 더위를 피하는 여성만의 독특한 노출 패션이 없는 것을 보면, 중국의 강력한 남성 중심 문화도 이런 풍습의 발생과 유지에 한몫한 것 같다.



광방쯔는 이후 한 단계 진화했다. 상의를 완전히 벗는 대신 윗옷을 반쯤 올린 채 배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자’며 광방쯔를 규제하자, 남성들이 생각해낸 고육책이라고 했다. 외신들은 이를 ‘베이징 비키니’라 부르며 중국의 낙후된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비판했다. 수백수천년 된 풍습을 하루아침에 없애기가 이렇게 쉽지 않다.



그나마 대도시권을 중심으로 이런 패션의 남성들이 점점 줄고 있다. 체온을 낮추는 친환경 패션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남들에게 심리적 불편함을 주면서까지 민망한 옷차림을 하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다. 베이징, 상하이 등이 글로벌 도시가 되면서 외국인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하는 분위기도 있다.



20여년 만의 변화는 더 있다. 중국 통신기기 회사 화웨이는 최근 세계 최초로, 두번 접는 3단 폴더블폰 ‘메이트엑스티(XT)’를 공개했다. 하루 뒤 화웨이 매장에서 직접 메이트엑스티를 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화면은 10.2인치로 웬만한 노트북만큼 컸지만 무게는 306g으로 예상보다 가벼웠다. 전체적으로 조잡함보다는 견고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다만 가격이 400만원대로 비싼 게 큰 단점이었다.



폴더블폰 출시에서 삼성에 뒤졌던 화웨이가 3단 폴더블폰 출시에서는 삼성을 앞섰다. 2019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제재 철퇴를 맞고 스마트폰 사업을 접기 직전까지 갔던 화웨이가 5년 만에 드라마틱하게 돌아온 것이다. 국내외 언론들은 화웨이가 삼성은 물론 스마트폰 최강자 애플과 본격적인 경쟁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화웨이의 귀환이 화웨이의 기술적인 노력과 성과만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아이폰 구매 제한령 등 보이지 않는 지원이 큰 몫을 했다.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반칙에 가깝지만, 중국식 기업 살리기는 엄연한 현실적 조건이다.



지난달 국내 언론들은 칭다오 맥주 축제에 등장한 한 무리의 상의 탈의 남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후진적 문화라고 비판했다. 재밌는 것은 상의 탈의를 주로 하는 40~50대 남성들이 화웨이 3단 폴더블폰의 가장 큰 구매 집단이라는 것이다. 워낙 비싸 젊은층은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년 여름쯤 웃통을 벗은 중년 남성들이 3단 폴더블폰을 넓게 펼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낙후된 문화적 풍습과 최첨단 과학기술·산업이 공존하는 곳, 바로 중국이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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