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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한국인 입맛으로 품질 가르는 ‘K커피 어워드’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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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꽃의 은은한 향이 퍼지며 잘 익은 오렌지의 과육이 가득 찬 듯 풍부한 산미가 돋보인다. 목 넘김 후에는 초콜릿을 입힌 아몬드의 고소한 뉘앙스가 살아나고, 입안에 맴도는 시트러스한 산미가 경쾌하다. 시럽 같은 질감이 점막을 어루만지는 듯 기분 좋은 느낌이 길게 이어진다.”

‘2024 K커피 어워드(여름·가을 시즌)’의 워시드(Washed)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콜롬비아 라 루이사(La Luisa) 농장의 카투라(Caturra) 커피에 대한 심사평이다. 한국의 커피전문가들이 세계 각지의 재배자들이 보낸 커피 생두를 관능평가해 최고를 가리는 대회이다. 미국과 영국 등 소위 ‘커피 선진국’의 특정 민간단체가 내린 점수가 스페셜티 커피를 가르는 기준인 양 간주되는 ‘구태’를 없애기 위한 첫걸음이다. 동시에 “한국인이 즐길 우수한 커피는 스스로 선별한다”는 자긍심을 높여주는 ‘문화 캠페인’이기도 하다.

세계일보

지난 7일 ‘2024 경기도커피콩축제’의 부대행사로 열린 ‘K커피 어워드’에서 한국인 심사위원들이 결선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모습. 커피비평가협회(C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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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을 거쳐 머리에 그려지는 맛의 이미지와 가슴으로 퍼지는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흔히 우리가 지각하는 맛의 80∼90%는 냄새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비슷한 커피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면서 섬세한 지표가 향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향만으로 커피의 우수함을 가린다면 몹시 인간적이지 못하다. 전자코나 크로마토그래프로 향 성분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차라리 더 명료하다. 한 잔에 담긴 커피가 얼마나 좋은지는 미각과 입안의 점막을 스치는 촉감을 거쳐 목 뒤로 넘긴 뒤에야 비로소 지각되고 인지돼 정서로 새겨진다. 미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까지 종합한 정체성이 향미(Flavor)이다. 그러므로 특정 커피가 어떤지는 향미로 기억할 일이다.

다음은 넌워시드(Non-washed)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에콰도르 얌바미네(Yambamine) 농장의 시드라(Sidra) 커피에 관한 총평이다. 워시드는 수확한 커피 열매의 껍질을 벗겨 생두를 물로 깨끗이 씻어낸 뒤 건조했음을 의미한다. 이 이외의 방식을 아우르는 넌워시드는 커피 열매를 통째로 말리는 내추럴, 산소가 없는 상태를 거치는 무산소발효, 이산화탄소를 주입한 환경을 거치는 탄산침용, 과일을 함께 버무려 인위적으로 향을 입히는 절임커피 등이 포함된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에 따라 맛이 다르게 발현된다. 총평을 통해 커피의 품질과 특성을 가늠할 수 있다.

“농익은 라즈베리의 달콤새콤함이 나른함을 일깨워준다. 빨갛게 익은 사과와 꿀을 바른 검붉은 생자두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커피를 삼킬 즈음, 진한 장미향이 그윽하게 퍼지면서 입안 가득 풍성함을 선사한다. 마치 오크 숙성을 한 와인처럼 바닐라와 시나몬의 뉘앙스도 있고 당밀 같은 농후한 단맛이 길게 이어진다.”

11일간 이산화탄소를 가득 채운 통에 두어 파치먼트에 붉은색이 배일 정도로 가공한 흔적이 과숙한 과일과 장미, 향신료의 향에 묻어난다. 커피의 향미에서 감지되는 다양한 속성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문학적 향유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커피가 만들어 내는 정서를 본능에 새기는 작업이다. 다시 만나면 알아볼 수 있도록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라즈베리, 바닐라 등 속성을 다룬 언어가 한국적이지 않은 것은 커피로 세계를 소통하려는 ‘글로벌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K커피 어워드가 확산돼 세계인이 커피 향미를 표현하는 데 한국인의 정서가 깊이 배어나기를 기원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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