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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파국으로 향하는 의대와 대학병원 [이상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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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빠진 의대, 위기에 처한 수련병원
전공의 없는 의료 체계는 도미노 신세
신뢰 상실한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한국일보

2025학년도 대학입학시험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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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25년 의대 입시를 증원한 대로 시행키로 해서 수시 입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 예과 1학년은 24년도 입학생 3,000명에 25년도 입학생 4,500명 등 무려 7,500명이 같이 공부하게 된다. 의대 교수들은 그런 상태로 도저히 교육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으나 결국 벽에 대고 외친 꼴이 되고 말았다.

내년에 의대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증원을 기회로 생각하고 많은 고3생과 재수생, 그리고 다른 과 재학생들이 의대 입시에 도전하고 있다. 휴학 중인 예과 학생들마저 보다 나은 의대로 옮기기 위해 입시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결과로 내년에는 모든 의대가 난장판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이런 예상도 의대가 정상을 찾는다는 가정하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정부에 실망하고 진료에 지친 교수들이 사직하고 올해 휴학한 재학생들이 복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최악의 상황인데, 오히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덕수 총리가 이번 사태는 전공의 책임이라고 비난한 데다가 경찰이 각 의대 전공의 대표를 소환해서 범죄인처럼 다루고 있으니 이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명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전공의들이 끝내 병원을 떠나면 우리나라는 향후 10년 동안은 전문의 배출이 없는 의료 후진국이 되고 만다. 일반 진료와 응급실을 일선에서 지키는 전공의는 교수와 의대생의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이들이 사라지면 의대와 대학병원은 온전할 수가 없다.

푸른 꿈을 갖고 의대를 졸업한 후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의사들은 우리 의료체계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면서도 미래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저수가(低酬價)와 사법 리스크 때문에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이들은 사명감과 희망을 갖고 병원을 지켰다. 정부가 의사들을 악마화하면서 의대 정원을 무턱대고 늘리려 하자 이들은 분노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자 대통령은 상급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식으로 전공의 존재 자체를 모욕했다. 전공의들은 스스로를 내려놓았으니, 이들은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포기를 한 것이다.

우리는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대학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부르지만 미국은 '교육병원'(Teaching Hospital)이라고 한다. 미국 전체 병원의 20%만 교육병원이지만 교육병원은 수술, 입원, 응급, 출산 등 중요한 의료행위의 50%를 담당한다. 교육병원에선 전공의들이 의술을 익히고 의대생들이 실습을 하며 펠로우라는 이름의 전문의들이 보다 높은 의술을 연마한다. 의학에서 진보와 혁신이 이루어지며 그러한 혁신을 이어갈 후진을 양성하는 곳이 우리가 수련병원이라고 부르는 교육병원이다. 요약하자면, 전공의가 없으면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은 기능을 하기 어렵고 그러면 그 나라 의료 시스템은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연쇄적으로 와해되고 만다.

윤석열 정부는 자고 일어나면 무슨 개혁을 한다면서 몇조 원을 퍼붓겠다고 발표하지만 한꺼번에 의대 정원을 50% 증원한 무모한 정부가 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라도 듣는 사람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대학병원은 무너져가고 있으며 내년 봄에는 전국의 의대에서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신뢰를 상실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의원내각제 정부라면 내각이 이미 무너졌을 상황임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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