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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AI가 붓질 단위로 작가 특성 분석…미술품 진위 가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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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는 미술품 감정 AI
회화·드로잉에 주로 적용
70~90% 정확도로 판별
온라인마켓 가품 골라내고
위작 논란 해소에도 도움
세계적으로 시장 초기단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


매일경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그린 미술품 감정 AI 이미지. 최근 그림의 붓질과 드로잉 선 하나하나를 분석해 특정 작가의 진품 여부를 감정해 주는 AI가 주목받고 있다.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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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베이(eBay)에서는 오픈마켓 상품으로 올라와 있던 회화 작품 수십 점이 갑자기 삭제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작가의 특징을 붓질 단위로 분석해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미술품 감정 인공지능(AI) 시스템에서 이들 작품이 95% 이상 확률로 ‘위작’ 진단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당시 위작으로 밝혀진 작품 중에는 19세기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작품으로 소개된 ‘Forest With a Stream’(약 7억9300만원)도 포함됐다.

#. 미술계에서 100년 넘게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17세기 회화 작품 ‘Armide and Renaud’는 올해 초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술품 감정 AI의 도움으로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이 그린 그림으로 판명된 것이다. 현재 개인 소장품인 이 작품은 미술품 감정평가사와 미술사학자들의 최종 검토를 거쳐 푸생의 카탈로그 레조네(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정리한 목록) 최신 개정판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독일 베를린국립회화관에 소장돼 있는 동명의 1637년작과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같지만 이보다 이른 1630년경 제작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최근 AI를 활용한 미술품 감정이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 경매, 해외 직접구매(직구) 등 활성화로 시중에 유통되는 미술품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전문 감정평가사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미술품 감정 AI는 작품의 진위 여부나 추정가를 보다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품 감정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위작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줄이고 미술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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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Armide and Renaud’ 연작. 오른쪽 작품은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인공지능(AI) 기반 미술품 감정의 도움으로 독일 베를린국립회화관에 소장돼 있는 동명의 1637년작(왼쪽)보다 이른 1630년경 제작된 푸생의 작품임이 확인됐다. 아트레코그니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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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술품 감정 AI는 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로, 회화·드로잉 등 평면 작품에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조금씩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2019년 설립된 스위스의 AI 기반 미술품 감정 업체인 아트레코그니션이 대표적이다. 자체 개발한 미술품 감정 AI 시스템을 활용해 현재까지 500여 건의 회화 작품을 분석·평가했다. 고객층은 개인 미술품 컬렉터(수집가)부터 기업, 미술관까지 다양하다. 일례로 2020년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은 위작 논란에 휩싸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9)을 의뢰해 진품 확률 97%라는 결과를 받았고, 전문가 검토 결과에서도 진품임이 확인됐다.

미술품 감정의 원리는 이렇다. 사전에 AI는 특정 작가의 검증된 실제 작품(진품)을 촬영한 사진과 가품 사진을 모두 학습한다. 가품 사진에는 생성형 AI가 작가 스타일을 흉내내 만들어낸 디지털 위작 이미지도 포함된다. AI는 디지털 스캔을 통해 작품의 물감층을 나누고 각 층에 있는 스트로크(stroke·붓질 또는 드로잉 선) 하나하나의 형태와 굵기, 선의 각도, 칠할 당시 압력, 질감, 조합, 색상 등을 분석하면서 해당 작가의 진품에만 나타나는 창작상의 특징을 파악한다. 이렇게 수백, 수천 장의 작품 사진을 스트로크 단위로 학습한 AI는 감정 작품의 고화질 사진만 있으면 5~10분 안에 이 작품이 특정 작가의 작품인지 아닌지 판별하고 그 확률을 계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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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국립박물관 소장품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9). 작품의 진위를 두고 50년 넘게 논란이 이어졌지만, AI 감정과 전문가 감정 모두에서 진품임이 확인됐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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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어떤 작품에 있는 1만번의 붓질 가운데 8000번의 붓질이 진품의 특징과 일치한다면 진품일 확률은 80%가 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아메드 엘가말 미국 럿거스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에곤 쉴레 등 거장들의 작품 수백 점에 나타나는 개별 스트로크의 특징을 학습한 AI를 활용해 특정 작품의 진위 여부(작자)를 평균 70~90%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인공지능학회(AAAI)지에 발표했다.

이에 소더비 등 주요 경매사들은 미술품 감정에 AI를 활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고, 사진을 업로드하면 AI를 이용해 무료로 작품의 진위 가능성을 평가해 주는 사이트도 늘고 있다.

다만 AI는 보조수단일 뿐 미술품 감정에 독립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직까지는 표준화된 미술품 감정 AI 모델을 갖추기 어렵고, 기술적인 분석만으로는 작가가 작품에 담은 주제나 감정 등 추상적인 부분을 정성적으로 검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브래드퍼드대 연구진은 AI 감정 결과 ‘The de Brecy Tondo Madonna’가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지만, 아트레코그니션은 이 작품이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이 아닐 확률이 85%에 달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작품을 모사하는 생성형 AI가 갈수록 정교해진다는 점도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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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의 드로잉 위작(왼쪽)과 진품. 미국 럿거스대 연구진은 미술품 감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작품에 나타난 개별 스트로크(드로잉 선)의 특징을 분석해 이들 작품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음을 밝혔다. 국제인공지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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