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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美 대선 불복 조짐… ‘2021 의사당 점거’ 재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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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유세장마다 ‘도둑질을 막아라’

조선일보

2021년 1월 4일 미국 조지아주 달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야외 집회장에서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라고 적힌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 모습. 2020년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트럼프 강경 지지자들의 주장을 상징하는 구호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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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장에서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구호들이 있다. ‘도둑질을 막아라(Stop the Steal)’와 ‘트럼프가 이겼다(Trump Won)’라는 문구다. 이는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의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후 결과에 불복하며 쓰기 시작한 표현으로, 트럼프가 이겼지만 그 승리를 민주당이 훔쳐갔다는 뜻을 담았다. 올해 대선이 아직 40여 일 남았고 여론조사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는 상황임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부정 투표·개표를 암시하는 구호를 벌써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미네소타주(州)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나 트럼프가 직접 작성하는 소셜미디어 등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트럼프가 패배한다면 이는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프레임이 지지자 사이에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2021년 1월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불리며 큰 충격을 줬다. 경찰 당국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 다섯 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미국에선 올해 대선이 끝난 후에도 패배한 진영의 극렬 지지자들이 결과에 반발해 폭력 시위를 벌이고 많은 불복 소송에 나서 큰 혼란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권자들이 이제 막 사전투표를 시작한 가운데 민주·공화 양당이 투표 자격이나 개표 절차 등을 놓고 벌써 미 전역에서 지난한 법적 공방을 벌이는 사례가 늘어 이런 불안은 빠르게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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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가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주 존스타운에서 열린 유세에서 ‘트럼프가 이겼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모습. 이는 트럼프가 패배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이 쓰는 말인데 최근 유세장에서도 자주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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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진영은 이달 초까지 대선 절차와 관련한 소송을 미 전역에서 100건 넘게 이미 제기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측은 이에 대응해 공화당 진영의 ‘무더기 소송’이 선거 방해라고 규정하고, 이를 기각시키기 위한 법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선거의 공정성을 다툰다고 주장하는 양 진영의 법적 분쟁은 벌써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유권자들 마음속에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 뿌려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연방 대통령을 뽑는 선거임에도 미 헌법이 대선 절차를 ‘각 주에 일임한다’고 규정해 주마다 절차가 제각각이고 복잡하다는 점은 이 같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트럼프 측의 소송은 주로 ‘선거권 없는 불법 이민자들이 유권자로 등록했다’는 데 맞춰져 있다. (미국은 사전 유권자 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으며 시민권자가 아니면 대선 투표 자격이 없다.) 이들이 이주자 정책에 호의적인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계획이란 주장이다. AP 등에 따르면 트럼프와 공화당 대선 캠프는 올 초부터 최근까지 이 주장을 바탕으로 미 전역의 주에서 현행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올해 대선 결과를 결정할 일곱 경합주 중 최소 네 주에서 이와 관련한 소송이 여덟 건 넘게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 대선 캠프는 지난달에만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 선거관리위원회를 ‘비(非)시민권자의 유권자 등록을 막아야 하는 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며 두 차례나 고소했다. 공화당 캠프 측은 로이터에 “우리의 소송은 비시민권자가 (불법적으로) 투표해 미 국민의 표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비시민권자의 실제 불법 투표 가능성에 대해선 ‘극히 드물어 선거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다. 뉴욕대 브래넌 법률정의센터가 2016년 대선 당시의 2350만표를 전수조사했더니 비시민권자의 표는 0.0001%인 30표에 불과했고, 친(親)공화당 성향의 헤리티지재단도 2003년부터 최근까지 부정선거 건수가 24건에 불과하다고 밝혔었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이 같은 소송에 시간과 돈을 쏟는 이유에 대해 매기 툴루즈 뉴멕시코주 국무장관(민주당)은 “‘내가 이긴다면 대선 결과는 적법하고, 패배한다면 사기’라는 서사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캠프는 공화당의 시도에 대해 “선거 자체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제기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4년 전 트럼프의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에 동조하지 않아 트럼프에게 비판을 받아온 제프 덩컨 전 조지아주 부지사는 최근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트럼프 캠프는 ‘대선은 사기’라는 의심의 씨앗을 심기 위해 선거와 관련한 사소한 법이나 규칙을 바꾸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공화당 캠프는 ‘투표를 보호하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지난 6월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2020년 같은 민주당의 술수가 이번엔 통하지 않도록 하자”라는 취지를 내건 이 캠페인엔 이달 초까지 이미 자원봉사자 17만5000명이 지원했다.

2020년 선거 결과 뒤집기 시도로 재판을 받고 있는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선거는 사기였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발언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트럼프는 지난 6월 경합주인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 집회에서 “그들(민주당)이 우리를 이길 유일한 방법은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이달 초 소셜미디어에 “대선에서 당선되면 올해 선거와 관련해 부도덕한 행위에 연루된 선거 종사자 등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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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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