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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자동 삭감 장치’가 아니라뇨…차관님, 기억 안 나세요?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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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금개혁 관련 브리핑을 하며 관련 서적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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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목 | 연금행동 청년TF팀장·한국노총 정책부장



“국민연금은 매년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민연금 같은 경우는 확정급여형입니다.”



지난해 8월14일 케이티브이(KTV·한국정책방송원)의 한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언이다. 국민연금이 민간연금과 구별되어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미래에 받을 수 있는 연금 급여액의 실질가치가 보존되고, 확정된 급여액을 가입자 본인이 인지할 수 있게 되어 노후설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발언 내용만 두고 보면 이 차관은 연금개혁에 있어 국민연금의 이 같은 강점을 포기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입장인 듯하다.



하지만 그는 입장을 번복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연금 개악안을 옹호하는 브리핑에 연일 나서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연금의 자동안정화 장치가 사실은 자동 삭감 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계산기로 아주 쉽게 계산해보면 이는 거짓이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기일’이라는 이름의 수급자가 연금 급여액으로 100만원을 받는다 가정해보자. 물가상승률이 3%라면 현행 국민연금은 급여액에 3%를 그대로 적용하여 급여를 더 주고 있다. 이는 다음 해에 이기일의 국민연금 급여액이 103만원이 되도록 한다. 자동안정화장치는 결국 이 적용 수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매년 일정 정도, 이를테면 매년 0.4%포인트씩 물가상승률 일부분을 제하고 연금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평균물가상승률이 매년 3%였다고 가정했을 때 매년 3%가 아닌 2.6%만 적용하는 것이다.



20년 뒤를 계산해보자. 이기일의 월 급여는 180만6천원이어야 하는데 위 방식의 자동안정화 장치를 적용하면 월 167만원으로 줄어든다. 물가보다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임금 상승률을 고려한다면 20년 뒤 100만원 이상 깎이는 국민연금 급여는 말 그대로 서서히 고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계산해봐도 자동안정화 장치는 급여를 ‘자동적’이고 ‘안정적’으로 ‘삭감’한다. 그래서 노동·시민·사회 진영에서 이를 “자동 삭감 장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을 보건복지부가 절대 급여가 안 깎이는 것처럼 설명하는 현실은 희극인지 비극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자동안정화 장치가 정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국민에게 수용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면, 토론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부분으로 고려했다면 최소한 자동안정화 장치를 통해 연금 급여액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물어본 기자들에게 구체적 답변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애초에 안을 제시할 때부터 구체적 적용 방식이나 시기,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제시하며 오해가 없게 설명했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보건복지부도 자신감이 없었다고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수급자인 ‘이기일’의 연금 급여가 확정급여로 작동할 수 있음을 전문가들도 일반 국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안을 내놓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된 지난 21대 국회의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를 수용한 단계적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준비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분위기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제도에 대한 기본 취지와 원리를 이해하고 극심한 노인 빈곤율을 감안했더라면 이같이 무책임한 자동 삭감 장치를 전면에 내세웠을 리가 없다. 1년 전 방송에서 확정급여형 국민연금의 강점을 피력했던 기억이 있었다면 이 차관은 이러한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견을 피력했어야 한다.



이 차관은 지난 10일 보건복지부 브리핑에서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상균 명예교수의 책 ‘낙타와 국민연금’을 들어 보이며 보건복지부의 연금개혁 방향이 타당함과 동시에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필자가 보기엔 이 차관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듯하다. 이 책의 말미엔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람이 모르면 용감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해치는 발언도 서슴거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발언이 국민연금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감성은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민연금을 발전시켜야 할 어떤 종류의 의무감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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