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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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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조력 존엄사’ 복지위 대다수 보류 입장…헌재에 의견없음 통보[어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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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국회 조력존엄사 논의 난항

11명 중 긍정 2명·부정 1명

헌법소원에 “별도 의견 없음”

조력 존엄사를 논의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소속 의원 대다수가 보류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조력 존엄사 관련 헌법소원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자 ‘의견 없음’이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할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자신들의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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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진행되고 있다.[사진=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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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표명 못 하는 국회…종교계 반발 등 이유
24일 아시아경제가 복지위 제2법안소위 소속 여야 의원 11명을 전수조사 한 결과 조력 존엄사에 대해 8명이 입장을 보류했다. 다른 2명은 긍정적, 1명은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보류 입장을 표명한 의원들은 ‘사회적 합의 필요’, ‘종교계 반발’ 등의 이유를 들었다. 조력 존엄사법은 지난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긍정 의견을 내놓은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별도 의견을 밝히지 않았고, 같은 당 박희승 의원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 다만 환자 사망과 관련된 것인 만큼 절차가 꼼꼼히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 의견을 피력한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적극적 존엄사에 해당하고 장애인 생존권, 생명 경시 문제 등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류의 뜻을 밝힌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나중에 토론회 및 공청회 등을 열어 전반적인 국민 의견수렴을 거쳐서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이명식씨와 그의 딸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한 답변 요청에 대해 “별도의 의견이 없음을 통보한다”고 제출했다. 헌재는 올해 1월 입법부작위 위헌 확인 등 조력 존엄사 관련 헌법소원 청구에 대해 심판 회부를 결정하고 심리에 착수했다. 이번 헌법소원은 국회가 입법을 하지 않아 국민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앞서 헌재는 2017년과 2018년 암 환자 가족들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재판을 끝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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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신중, 의료계·학계는 반대
조력 존엄사법의 쟁점은 환자 의사결정능력, 연령 기준, 기대여명, 질병의 종류, 진정성 확인 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또한 구두·서면, 반복 의사 표출, 숙려기간, 대체 방안 설명 의무, 담당 의사의 업무·권한, 시행 절차, 기록 보관 의무, 심사업무 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형법과 구별해 의사들의 형사책임 면책 조항이 명시돼야 한다.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조력 존엄사 관련 법안은 2건이다. 그러나 조력 존엄사의 제도화와 연명의료결정 범위 확대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은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에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력 존엄사를 원하는 사람이 신청하면 심의·결정하도록 했다. 대상자 결정일부터 1개월이 경과하고, 본인이 담당 의사 및 전문의 2인에게 조력 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만 이행할 수 있다. 조력 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을 배제한다.

안 의원은 2022년에도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복지위 제2법안심사소위에서 “지금 연명의료 결정에 대해서는 임종기에 대해서만 허용을 하고 있는데 말기, 식물상태, 치매 등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 이후 조력 존엄사를 검토하는 것이 국민의 인식과 여러 가지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개정안’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 환자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법은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환자를 구분하기 어렵고,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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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조력 존엄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의료계·학계는 대부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복지부는 생명권과 자기 결정권으로 찬반 의견이 대립하고 있으므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제화는 시기상조이며,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생애말기돌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시스템이 마련이 우선돼야 하고, 자살 확산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말기 환자가 생을 일찍 마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며,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환경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광석 복지위 전문위원은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 입법례를 참조해 조력 존엄사 법제화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의사·의료기관의 기본적인 역할과 의료윤리에 배치되고,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으며, 의료계와 학계 등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엄한 죽음이라는 문제를 일반적인 행정 결정과 유사하게 신청주의와 심사위원회에서 허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의사의) 자살방조죄에 대한 면책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종교적 쟁점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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