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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텔레그램 결국… 범죄자 정보 수사기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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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프 CEO ‘보안’ 상당부분 포기

사용자들 ‘사이버 망명’ 여부 주목

마약·딥페이크 등 각종 범죄 수사에 ‘청신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용자의 정보가 앞으로 수사기관에 제공된다. 치열한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사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앞세워 성공한 텔레그램이 최근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 자사 메신저의 상징과도 같았던 ‘보안’을 상당부분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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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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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는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보안지침 변경에 대한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텔레그램은 향후 수사기관의 적법한 요청이 있을 경우 각종 불법행위에 연루된 사용자의 IP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넘길 예정이다. 이와 관련, 두로프 CEO는 “나쁜 행동을 하는 소수의 이용자가 10억명에 가까운 텔레그램 서비스 전체를 망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로프는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의 정보 제공을 위한 서비스 약관 개정 이외에도 텔레그램 내 각종 불법 콘텐츠에 대한 단속도 강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수주간 인공지능을 이용해 텔레그램 내 불법 콘텐츠들을 찾아낸 뒤 사용자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인 니콜라이와 파벨 두로프 형제가 2013년 출시한 서비스로, 편리함을 우선으로 어필해온 여타 메신저들과 달리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치권력으로부터 이용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그 덕분에 텔레그램은 반정부 운동이나 사회운동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두로프 형제는 자사 철학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 형제는 2014년에 자신들이 설립한 또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인 ‘브콘탁테’에서 반정부 커뮤니티들을 폐쇄하라고 러시아 정부가 요구하자 러시아를 떠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근거지를 두고 사업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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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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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호가 오히려 범죄자들에게 악용되며 메신저가 마약 밀매, 조직범죄, 테러 조장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최근에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 유포의 근원지로 지목됐고, 한국에서도 2019년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범죄인 이른바 ‘엔(N)번방’ 사건이 발생해 큰 파문이 일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과 지난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시작된 이후로는 전쟁의 선전선동 수단으로도 악용됐다. 상대를 비방하고 대중에게 적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가짜뉴스들이 텔레그램을 통해 대거 유통됐다.

이런 여러 문제에 대해 텔레그램은 자사 보안지침을 근거로 각국 정부의 범죄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해 왔지만, 끝내 갈등이 폭발하고 말았다. 지난달 말 프랑스 검찰이 텔레그램 내 아동 음란물 유포와 마약 밀매, 조직적 사기 및 자금 세탁 등을 방치해 사실상 공모하고 수사 당국의 정보 제공 요구에 불응한 혐의 등으로 두로프를 예비 기소한 것이다. 그는 보석금 500만유로(약 74억원)를 내는 조건으로 석방됐지만, 출국은 금지된 상태다.

결국, ‘명’보다 ‘암’이 더 커지며 텔레그램도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됐다. 지난 6일 주변에 텔레그램을 쓰는 다른 이용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기능인 ‘근처 사람들’과 익명 블로그 서비스의 미디어 업로드 기능 등 범죄 악용이 우려되는 서비스를 일부 삭제하는 등 변화를 주더니 결국 보안 관련 지침도 포기하게 됐다. 당시 텔레그램은 ‘자주 묻는 질문(FAQ)’란에서 ‘개인 채팅 내용은 보호되며 이를 대상으로 한 조정 요청은 처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삭제했는데 이번 지침 변경을 위한 사전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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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이 보안 관련한 지침을 일부 포기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용자층이 대거 텔레그램을 떠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2014년 수사당국의 모바일 메신저 실시간 모니터링 지침 발표와 2016년 테러방지법 통과 등을 계기로 카카오톡 등 기존 메신저를 떠나 서버가 외국에 있는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이용자층이 크게 늘었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다. 텔레그램의 보안 정책 변경으로 시그널, 세션 등 보안이 한층 더 강화된 메신저로 사용자들이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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