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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사랑하는 벗이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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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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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날마다 가면을 쓰지. 어떤 날은 가면 쓴 얼굴을 제 얼굴이라고 믿기도 하지. 가면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그날그날 마음 상태에 따라 얼굴이 변하는 것이다. 얼굴 고쳐 주는 사람이 의사인가, 마음을 고쳐 주는 사람이 의사인가? 마음의 병도 큰 병인데 얼굴 고쳐 주는 의사들이 넘쳐나누나. 얼굴 고쳐 달라는 환자가 훨씬 많으니 그럴 테지. 그래봤자 날마다 가면을 쓰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마음이 그 모양인데 얼굴을 고친다 한들 뜻을 이루겠는가. 그림자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혹여 주인이 가면을 쓰고 나쁜 짓을 한다 해도 그림자는 주인의 몸에 꼭 붙어있다. 그렇게 하는 게 주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림자를 배신한 주인은 있어도 주인을 배신한 그림자는 없다. 그림자는 몸의 것인가, 마음의 것인가?



[2] 버릇처럼 가면을 쓰는 사람이 많다. 거짓 웃음, 거짓 눈물이 그러하다. 아이들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해맑다고들 하지.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도 가면을 쓴다. 아무리 변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씁쓸하고 슬프다. 부모 잘못도 있지만 사회 잘못이 더 크다. 고운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동무를 보았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얼마나 행복하게 보였으면 나는 그들의 행복이 가식이 아니기를 바랐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동무의 아내를 떠올렸다. 나는 언제쯤 저런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뒤통수가 서늘하여 뒤돌아보니 그림자가 성난 얼굴로 내 신발을 꽉 붙들고 놔 주질 않는다. 그림자를 털어내려고 허둥지둥 걸음을 재촉했다. 그냥 동무의 행복을 부러워한 것뿐인데 그림자는 내가 동무의 아내를 탐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 더운물에 비누칠까지 해가며 얼굴을 박박 문지르고 잤다.



[3] 예순 고개 넘을 땐 마음이 허했었는데 일흔 고개 넘으니 허한 감정마저도 느끼지 못한다. 무디어졌다는 거지. 마음에 물기가 없어진 것 같고 뭔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오래전에 떨어져 나간 것을 뒤늦게 발견한 건지도 모르지. 젊을 때 시작된 병을 늙어서 발견하는 것처럼. 꿈 조각인지 아니면 꿈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건지, 아무튼 내 마음을 지키고 있던 그 무엇이 사라진 게 틀림없다. 불현듯 온전한 내 모습을 되찾으려면 떨어져 나간 그 조각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건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후각을 상실한 것처럼. 요즘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나도 그렇게 되었다. 점점 멍청해지는 것 같고 생각의 샘물이 말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한 번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를 꿈꾼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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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꿈은 분명히 아니다. 애당초 꿈이 없었는데 꿈 조각은 무엇이며 꿈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는 건 또 무엇인가? 핑계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말하지. 꿈도 없으면서 꿈을 잃어버렸다 하고 별도 보지 않으면서 별빛이 희미해졌다고 하지. 나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림자에 관심도 없으면서 내 그림자를 통 볼 수 없다고 했지.



[5] 그림자였네!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 그 무엇이라는 게. 지금껏 그림자가 내 몸의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라, 이놈이 진짜 내 그림자인지? 내 몸은 그저 껍데기이고 ‘나’는 마음속에 있으니 진정한 그림자는 마음의 것이라 해야 옳지 않은가? 마음의 그림자는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발 가는 대로 움직이는 몸의 그림자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내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가끔 그림자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잃어버렸다는 것과 사라졌다는 건 말맛이 좀 다른 거다. 조각 맞추기!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 걸 찾아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다. 어둠이 너무 밝아서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는 나의 말은 완전 개똥이었네. 그나마 다행인 건 껍데기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내가 알고 있었다는 거지. 간절함이 없으면 결코 사라진 그림자를 찾을 수 없어. 찾아 헤맨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6]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몽골에 가게 되었다. 독수리 길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였다. 비행기에 오르자 사막이 떠올랐다. 마치 하늘의 명을 받은 비행기가 나를 사막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가면 내 그림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주님한테 말했다. 주님, 그림자를 잃어버렸습니다. 아, 또 솔직하지 못했네. 사라졌다고 말해야 할 걸 잃어버렸다고 말했네. 주님, 제 그림자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7] 독수리는 착한 새다. 자연의 청소부라는 별칭도 있다. 먹이를 찾아 우리나라에 왔다가 때가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나를 찾아 떠날 수도 없다. 독수리보다 못한 내 인생! 처음으로 사막을 본다. 이 넓은 벌판에서 사라진 그림자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사막에 내 그림자가 있다는 확신도 없지 않은가. 뭉게구름, 풀, 양, 독수리, 말…, 모두 하늘 뜻에 따르면서 살고 있구나! 그렇게 살지 않은 내 인생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막을 어루만져 주는 저들이 있기에 사막은 외롭지 않겠다. 그것 봐라,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가보지도 않은 곳을 가본 것처럼 말하면 아니 된다. 지금껏 나는 사막이 외롭고 삭막한 곳인 줄만 알았다. 살아 온 동안 나를 어루만져 주고 지켜 주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내 그림자! 그런 분들을 잊고 살았으니 나는 참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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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지만 모래가 있고 풀도 있고 바위도 있고 양도 있고 말도 있고 독수리도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유목민으로 살았겠구나. 믿음을 저버린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으로 아까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 진작 사막을 찾아야 했었다. 배신의 풀도 있고 욕심의 풀도 있고 미움의 풀도 있고 양들은 그 풀을 뜯어 먹고 사람들은 그런 양들을 잡아먹고…. 사람들 마음속에 배신과 욕심, 미움 따위가 자라는 건 당연한 거다. 도시에서 미움을 말하는 건 사치다. 사막에 가면 미움마저 귀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사랑하는 법을 몰라 사랑할 수 없다면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이라도 심어 볼 일이다.



[9]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놀라운 일이다. 이 넓은 벌판에 나무 한 그루라니! 저 나무는 어떻게 살아남아서 이 벌판을 지키고 있는 걸까? 길 잃은 양들의 이정표 노릇이라도 하려는 걸까? 새들에게 등대 역할이라도 하려는 걸까? 가까이 가보니 서 있는 나무 말고도 풀밭 위에 누워있는 나무도 있다. 풀밭 위에 누워있는 나무는 서 있는 나무의 그림자다. 순수하고 고요한, 정말이지 누워있는 나무가 서 있는 나무를 지켜 주고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이다. 또 다른 생각! 어쩌면 벌판이 나무를 지켜 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10] 다섯 살 때였나? 눈 그친 달밤, 아이들하고 놀다가 집에 가는데 그림자가 내 몸에 붙어서 집까지 데려다주었지. 사실 그때 조금 무서웠는데 옆에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벗을 잊고 살았다.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벗을 멀리한 거지. 다시 만난다 해도 무슨 낯으로 용서를 빈단 말인가.



[11] 이제 알겠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껍데기이고 내 속의 나는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동안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나인 줄 알고 살았으니 헛웃음이 나오네. 몸의 그림자도 보지 않는 놈이 마음의 그림자를 어찌 알아보겠는가. 병든 나를 일깨워 주기 위해 떠나야만 했던 그림자! 나는 내가 병든 것도 모르고, 도시 불빛에 그림자가 병든 거라고 말했지.



[12] 하느님은 잘 계실까? 서로 자기네들의 하느님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세상의 강들이 바다에서 만나는 건 아이들도 다 아는 얘긴데 하늘을 두고 헛된 다툼질만 하고 있으니…. 뭉게구름 드넓은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혹시 하느님이 아닐까? 이정표 없는 사막에서 어떤 나그네가 눈물을 흘린다. 그냥 홀로 서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보았을 뿐인데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아, 드디어 잃어버린 조각을 찾았다. 저 나무는 외로운 나무가 아니라 빛나는 나무다. 어두웠던 마음을 훤하게 비추어 주니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보인다. 이제 그 자리에 조각을 맞춘다. 빈 소켓에 전구를 끼워 불이 환하게 켜진 것처럼 내 몸 뒤쪽으로 검고 또렷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마음의 그림자를 찾았으니 하늘에 고마워하자. 나 하나를 위한 어둠보다 모두를 위한 빛으로 사는 게 옳다. 혹여 내 그림자가 땀 흘리는 사람한테 그늘이 되어 준다면 좋은 일 아닌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안개가 사라진다. 푸른 하늘은 흰 구름의 놀이터! 밤하늘은 별들의 놀이터! 앞으로 남은 인생,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놀이터가 되자. 벗이여, 부디 나를 용서해주게!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마세. 그대는 나의 놀이터, 나는 그대의 놀이터!



어디로 갔는가 따뜻했던 그림자
그대 없는 내 모습 구슬프고 가엾다
뜨거운 눈물이 비처럼 흐르네
사랑하는 벗이여 보고 싶다



그대 찾아 먼 먼 길 바람 소리 외롭다
끝없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늙어버린 눈물이 햇빛에 반짝이네
쓸쓸한 저 벌판에 그림자 하나



-‘그림자를 찾아서’, 2023



한돌(음악가)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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