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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겨를]가만한 가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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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온 세상에 가을이 성큼 왔다. 가을이면 양희은의 노래 ‘가을 아침’(1991)을 가만히 들으며 가을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20대 시절 가을이면 자주 들어서인지 양희은의 원곡이 더 친숙하다. 그리고 가을이면 연례행사처럼 시집들을 들추며 읽는다.

요즘 권선희, 박경희, 박승민, 안현미 시집을 읽었다. 우리나라 시의 ‘진경’이 여기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시인들은 저마다 음색도, 음역도, 언어도 다 다르지만, 시집 행간에는 무용(無用)하고 무력(無力)한 언어야말로 효율성보다는 ‘충분성’을 지향하는 삶이고 사회라는 생태경제학적 믿음이 깔려 있었다. 발전, 성장, 효용 같은 무력(武力)이 지배하는 언어와 세상에 맞서 시인들은 무력(無力)한 언어의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박경희는 <미나리아재비>(창비)에서 고향인 충남 보령 땅을 꿋꿋이 지키며 하나둘 소멸해가는 사람들과 농촌의 풍경을 애잔하지만 넉넉한 시선으로 껴안는다. 엄니, 아부지를 비롯해 석남이네 할머니, 참나무집 아줌마, 정남이 엄니, 엄나무집 아저씨, 송철이네 할머니, 길석이… 같은 우수마발의 이름 없는 민중들을 일일이 호명한다. 사양(斜陽)의 몰락 위기에 처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시인은 “나는 절실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여기에 있다”(‘나의 바다’)고 겸손한 태도를 여일하게 취한다.

이러한 태도는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창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권선희는 포항 ‘구룡포 연가’라고 할 수 있는 시집에서 시 쓰는 ‘만신’이 되어 구룡포 사람들을 대신해 한껏 울어준다.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징’) 같은 구절을 보라. 권선희는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시집 곳곳에서 드러내며 공동체를 지키고 공동체 파괴에 맞서고자 한다.

시인의 예리한 언어와 상상력은 박승민의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창비)에서 정점에 달한다. 시인은 임박한 생태 위기의 파국에 맞서 인간중심주의 너머 비-인간 존재를 온전히 껴안으려는 시선으로 전환하자는 인식을 드러낸다. “인간의 눈을 포기할 때/ 세계는 얼마나 광활한가/ 위험보다는 위대함에 가까운가”(‘코로나 검사소’). 특히 수운 최제우의 ‘용담가’에 등장하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의 의미를 시화한 ‘헛됨이 오만년이라면’이라는 작품은 심층생태시의 한 정점이자 생태경제학을 위한 위대한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헛됨의 의미는 한낱 ‘헛수고’가 아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의 시수업 또한 계속된다. 이번 시간에는 양희은의 ‘가을 아침’을 들으며, 안현미의 <미래의 하양>(걷는사람)을 읽는다. 한없이 무도한 세상에서 한 사람의 시인-시민이자 시민-시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고, ‘생활’과 시(예술)의 위기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마침내 저 ‘생명’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시의 화자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동의 미래 따위는 없는 현실에서 겨우 매달린 삶을 살아가는 시의 화자를 부리는 안현미의 언어가 탁구공처럼 경쾌하다. “구직도 구애도 구원도 없는 가장 어두운 밤”(‘날아다니는 꽃’)을 관통하는 시의 화자들에게도 좀 더 가만한 가을빛이 함께하기를!

경향신문

고영직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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