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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18년전 레바논 전쟁때와 달랐다...이스라엘 공습 뒤엔 ‘승리 독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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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보고서 “지상군 늦게 투입”

2020년 ‘점령 아닌, 최대 파괴’로

새 ‘승리’ 개념 만들고 이번에 적용

처음은 헤즈볼라 군 수뇌부 제거였다. 지난 7월 30일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알라의 당’이란 뜻) 총사령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베이루트의 거주ㆍ사무공간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을 받아 살해됐다. 9월20일에는 베이루트에서 회합 중이던 헤즈볼라의 엘리트 특수부대 라드완 부대의 이브라힘 아킬 사령관 등 지휘관 10여 명이 공습에 제거됐다.

다음은 주요 군사시설 파괴. 9월 23일 첫날 이스라엘 공군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에 위치한 헤즈볼라의 주요 군시설과 로켓ㆍ미사일 비축기지 1600여 곳을 강타했다. 지난 수십년 간 전세계에서 전개된 최대 규모의 공습이었다. 이후에도 230곳을 추가로 파괴하는 등 지금까지 레바논 내 1900곳을 폭격했다.

이 모든 것은 2006년 8월 제2차 레바논 전쟁이 끝나자마자,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의 교훈을 도출하려고 그해 9월 발족한 위노그라드(Winograd) 위원회의 보고서와 2020년 새로 정의한 이스라엘군의 ‘승리(victory)’ 군사교리에 따른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상군 투입. 헤르치 할레비 이스라엘방위군(IDF) 참모총장은 25일 2개 예비 여단에 동원령을 내리고 “공습은 지상군을 투입하고 헤즈볼라를 약화시키는 기반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해 지상군 투입가능성을 비쳤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는 헤즈볼라 세력을 두 나라 국경에서 30㎞ 떨어진 리타니 강 북쪽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헤즈볼라의 로켓 미사일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도 북부에서 7만 명이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공습만으론 불가능하다. 할레비 IDF 참모총장이 국경을 지키는 이스라엘군 병사들에게 “적의 영토에 들어가서 그들의 인프라를 단호하게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그러나 헤즈볼라도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에 계속 진화했다. 병력과 로켓ㆍ미사일 보유 기수(基數)에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11개월이 넘도록 ‘박멸’하지 못한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하마스 전력의 수십 배다.

헤즈볼라는 또 레바논 남부 곳곳에 수많은 지하 터널을 설치했다. 23일 이스라엘 공습 타깃이 1600여 개였다는 것 자체가 헤즈볼라가 그만큼 무기를 전역에 분산 배치했다는 뜻이다. 헤즈볼라는 25일 아침 텔아비브를 향해 탄도미사일 한 기를 발사한 것 외에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않고 있다.

◇승자(勝者) 없었던 이스라엘의 2006년 레바논 침공

이스라엘이 2000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래, 이스라엘 북부는 비교적 평온했다. 이 탓에, 북부는 전혀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7월 12일 헤즈볼라가 기습적으로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병사 3명을 살해하고 2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의 구조 특공대가 들어갔지만, 헤즈볼라의 대전차(對戰車) 지뢰에 이스라엘의 메르카바 Mk III 전차가 파괴되고 전차 승무원 4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은 나중에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해 34일 간 헤즈볼라와 싸웠지만,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헤즈볼라는 대전차 미사일로 이스라엘 전차 20대를 파괴했고, 지중해에 떠 있던 이스라엘 전함 한 척도 파괴했다. 이스라엘에서 병사ㆍ민간인 163명이, 레바논 측에서도 1000명 이상이 죽었다.

이스라엘의 고전(苦戰)은 뜻밖이었다. 당시 헤즈볼라는 분대(分隊) 단위의 게릴라 전술로 이스라엘군을 공격했다. 34일 동안 4000기 이상의 헤즈볼라 미사일이 이스라엘에 쏟아졌다. 이스라엘군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교착 상태에 빠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했다.

◇휴전 한 달 뒤 ‘교훈’ 도출할 위원회 출범

전쟁이 끝나고 한 달 뒤인 9월, 이스라엘 정부는 퇴직 판사 엘리야후 위노그라드가 이끄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어떻게 헤즈볼라 같이 작은 준(準)군사집단이 이스라엘의 강력한 전력을 버틸 수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위원회였다. 이 위원회를 발족한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총리부터 국방장관, 군 수뇌부가 위노그라드 위원회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위노그라드 위원회는 정부의 부족한 전쟁 준비, 정부ㆍ군의 늑장 의사결정, 공군력의 한계, 뚜렷한 가용(可用) 수단도 없었던 전쟁 돌입, 뒤늦은 지상군 투입 등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예를 들어, 중동 최고의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2006년 전쟁 시작 1주일 만에 공습 리스트가 바닥났다. 헤즈볼라의 군(軍)자산에 대해 충분히 축적된 정보가 없었다. 이후에는 전장에서 노출되는 헤즈볼라 병력을 공격할 뿐이었다. 이스라엘 부상병들이 치료 받는 이스라엘 북부의 최대 병원에도 헤즈볼라 폭탄이 떨어졌지만, 이 병원엔 대피소가 없었다. 헤즈볼라가 병원을 타격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최단 시간ㆍ최대 파괴의 새로운 ‘승리’ 개념 확립

이스라엘 국방부와 정보기관 모사드는 레바논 전쟁이 끝나자, 곧 헤즈볼라와의 다음 번 전쟁을 준비했다. 위노그라드 보고서와 그 후에 나온 여러 보고서들, 2020년에 새로 정립된 ‘승리 독트린(victory doctrine)’이 그 결과물이었다.

2020년 아비브 코차비 당시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적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최단 시간에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적의 공격 능력을 최대한 파괴하는 것”을 ‘승리’로 규정했다. 시간ㆍ이스라엘군 피해ㆍ적 파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목표에 근접할수록 승리는 그만큼 결정적이다.

이에 따라 2006년 수십 개에 불과했던 헤즈볼라 지휘체계ㆍ무기고 타깃 데이터베이스는 이스라엘군이 지난 18년 간 헤즈볼라와의 소규모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수천 개로 늘어났다.

◇1일 이스라엘 공습 2006년 200회 →23일 1600회

23일부터 시작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습은 이 ‘승리 독트린’에 따른 것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보도했다. 헤즈볼라의 방공(防空) 시스템이 빈약한 점을 노려, 최대한 헤즈볼라를 파괴하자는 것이다. 2006년 전쟁에서 하루 평균 200개에 그쳤던 공습 타깃이 이번엔 23일 첫날에 1600건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레바논 민간인(헤즈볼라 포함) 사망자도 수일 새 600명을 넘어섰다. 2006년 34일 동안 숨진 레바논인(1100명)의 절반 이상이었다.

이스라엘이 노리는 것은 최대 20만 기로 추정되는 헤즈볼라의 로켓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비축분을 최대한 파괴하고, 헤즈볼라를 리타니 강 북쪽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하마스의 수십 배 전력인 헤즈볼라

그러나 헤즈볼라도 지난 18년 간 계속 진화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고, 이란의 꾸준한 지원 속에 단거리ㆍ중거리 로켓ㆍ미사일 12만~20만 기를 비축했다. 헤즈볼라는 하루에 최대 3000기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가자 지구의 테러집단 하마스의 전쟁 전 보유 추정치인 6000기의 20~30배에 달한다.

조선일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또 병력은 10만 명을 넘는다. 작년 10월 기습 테러 이전의 하마스 병력은 약 3만 명(IDF 추정)이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에 진입한 이래 11개월 동안 전투를 벌여 지금까지 1만 7000명의 하마스 대원을 죽였지만(전체 가자 주민 희생자는 4만 1500여 명), 아직도 곳곳의 지하 터널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튀어나와 이스라엘군을 공격한다. 가자 어디엔가 있을 하마스 지도자 아히야 신와르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3일 대규모 공습 이후에 “오늘 공습은 걸작품이었다. 헤즈볼라는 창설 이래 최악의 한 주를 맞았다”고 말했지만,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만으로 레바논 남부에 헤즈볼라가 없는 ‘완충 지대’를 만들 수는 없다.

각종 부패 혐의로 기소된 데다가, 가자 전쟁에서 ‘토탈 빅토리’를 거두지도, 인질(101명 추정)을 석방시키지도 못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로선 전선을 북쪽으로 확대해 여론의 방향을 돌리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레바논 북부로의 지상군 투입은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헤즈볼라와 전면 충돌하는 것은 이란과의 전면 충돌로 이어져, 매우 유혈이 낭자한 고통스러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의 연대 차원에서 지난 11개월 간 이스라엘 북부를 계속 공격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폭격에 보유 무기가 다 파괴되기 전에 먼저 사용하고 싶은 유혹과, 이로 인해 레바논 전역이 가자처럼 폐허로 변할 경우에 받게 될 비난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미 레바논 남부에서 9만 명 이상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북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BBC 방송은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에 대한 최대 공습으로 헤즈볼라가 무너지길 기대하지만, 이스라엘의 적(敵)은 잘 무장되고 흥분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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