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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남 돌보던 삶…유방암 뒤 극복 자신감엔 ‘명상’ 가장 도움 됐어요”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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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란 원장은 시간이 날 때면 경기도 양주군 요양원 근처에 있는 마장호수를 찾아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원장이 지난 11일 마장호수에서 호숫가 둘레길을 걷는 즐거움을 설명하고 있다. 권복기 건강한겨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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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란(64)씨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돌봄이다.



1982년 유치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유치원장과 어린이집 원장을 거쳐 지금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하루는 자신을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새벽 5시면 눈을 뜨는 그는 30분가량 기체조로 몸을 이완한 뒤 명상을 한다.



“호흡명상을 주로 하는데 마음이 편해지고 몸에 에너지가 찬다는 느낌이 들어요.”



출근해서도 일과 시작 전 10분가량 명상한다. 마무리는 기도.



“여기 계신 어르신들과 그분들을 돌보는 이들 모두 편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모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이씨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어르신들 방을 찾아 안마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한 어르신의 가슴을 쓸어드리면서 ‘참 열심히 잘 사셨네요’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지난 삶을 인정받는 기분이셨나봐요.”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소홀했던 분이 많다고 했다. 이씨 자신이 그랬다.



2006년이었다. 하나뿐인 남동생이 욕실에서 쓰려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씨는 동생을 보낼 수 없었다. 첫아들을 잃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이씨의 오빠는 국민학교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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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명상으로 시작하는 이희란 원장이 지난 13일 원장실에서 호흡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 이희란 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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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면서도 하루에 두 번씩 중환자실을 찾아 동생 몸을 씻기고 풍욕을 시켰다. 침술도 배워서 썼다. 하지만 3년 동안 자리보전하던 동생은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어린이집 운영도 큰 스트레스였다. 동생이 쓰러진 해 이씨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양시립마두어린이집 원장 공모에 지원해 뽑혔다.



국공립어린이집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여서 마두어린이집에는 고위층의 방문이 잦았다. 감독 당국의 지도점검을 앞두고는 한 달 동안 밤 10시까지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그예 탈이 났다. 2010년 건강검진 때 왼쪽 가슴 위쪽에 뭔가 만져진다고 했더니 병원은 초음파 검사를 권했다. 결과는 유방암 판정. 모래알이 뿌려진 것처럼 암세포가 유방에 퍼져 있다고 했다. 4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온몸이 벌벌 떨려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순식간에 울음이 터져나와 하염없이 울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빠, 동생에 이어 이제 내 차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삼 남매를 모두 잃으면 부모님 심경이 어떨까 생각하니 기가 막혔어요. 죽어도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수술과 함께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왼쪽 유방의 암세포를 다 긁어내고 림프샘 17개를 잘라냈지만 다행히 전이는 없었다. 3주 간격으로 이뤄진 8차례의 항암치료도 잘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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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란 원장이 노인인권과 노인학대를 주제로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이희란 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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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발을 막는 거였다. 유방암은 재발 확률이 높았다. 이씨는 돌봄 순위 맨 상단에 자신을 놓겠다고 결심했다.



“가장 중요한 게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인 마음과 완치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야 했는데 명상이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음식도 가렸다. 현미밥과 유기농 채소를 주로 먹었다. 차거나 차가운 성질의 음식은 끊었다. 소고기와 생선도 많이 먹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매일 아침 기체조를 1시간가량 하고 30분 동안 풍욕을 했다. 한겨울에도 풍욕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직을 계속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었다. 발병 뒤 사직 의사를 밝혔지만 감독기관의 책임자는 휴직을 권했다.



“저처럼 제대로 운영할 분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칭찬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명상이 많은 도움이 됐다. 잠자리에서 호흡명상을 하다보면 어느새 잠들곤 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자 건강이 좋아졌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재발 가능성을 우려해 5년이 지나도 완치 판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은 안 됐다.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한 운동을 했다. 무엇보다 꾸준한 명상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건강이 좋아지자 그는 활동 폭을 넓혔다. 경기도 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된 것이다. “내 안에 명예욕이 있더라”고 했다.



하지만 3년 임기를 마치자 생각이 바뀌었다. 경기도 회장은 전국연합회 회장 자리로 가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지만 미련 없이 마음을 비웠다. “계속하다간 암이 재발할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새로운 일은 또 생겼다. 남편과 요양원을 함께 경영하던 남편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운영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해 4월 요양원을 맡았다.



“요양원 운영이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그래도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은 제가 꽤 잘하더라고요. 저도 잘 돌보면서 해보려고요.”



경기도 양주/권복기 건강한겨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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