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스러운 코리아 밸류업 지수였다. 증권과 장내파생상품의 거래 안정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답게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안정성에 초점을 뒀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구성 종목은 100개에 달하고, 한 종목당 비중 한도는 15%에 불과하다. 지수가 발표되자마자 빈축이 뒤따른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본다. 높은 수익률에 목마른 개인 투자자들에게 안정성을 강조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밍밍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센’ 상품을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은 이미 매운맛에 중독됐다. 실제 한 대형 자산운용사의 최고 인기 상품 중 하나는 미국 테슬라에 대한 실질 익스포저(위험 노출)를 약 60%까지 끌어올린 고위험 ETF다. 분산 투자라는 ETF 도입 취지의 대척점에 서 있는 상품이 더 인기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대한 투자자 반응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래소는 지수를 내놓는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휘둘리거나 섣불리 땜질해선 안 된다. 거래소가 지수를 광범위하게 설정한 건 훼손된 ETF 도입 취지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본다. 거래소가 중심을 못 잡으면 투자자는 지수에 포함된 종목을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인증한 주주가치 제고 상장사로 오인할 수 있다. 정부도 거래소가 프라이빗뱅커(PB)처럼 투자 종목을 찍어주는 모양새로 흘러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이다.
“향후 기업 가치가 제고될 기업을 지수에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절치 않다. 이는 거래소에 ‘주가가 미래에 오를 종목을 지수에 포함하라’는 요구와 같다. 신도 알 수 없는 주가 움직임을 거래소가 알 리 만무하다. 이건 자산운용사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ETF를 만들면서 다양한 에지(edge)를 둬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넣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마찬가지다. 이 주장에는 ‘저PBR주가 상대적으로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라는 증명되지 않은 전제가 깔려 있다. 후진적인 거버넌스가 주가의 발목을 잡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 PBR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매력적인 종목은 아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많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유무만 고려했을 뿐 그 추세는 들여다보지 않았고, 지수 안정성을 이유로 기준에 맞지 않는 SK하이닉스(실적 적자)를 특례 편입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두산밥캣 등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원성이 큰 종목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지수를 운영하며 차근차근 수정해 나가면 된다. 시작부터 무용론을 퍼뜨리며 딴죽을 거는 건 기업의 가치 제고 의욕을 꺾는 행위다. 현재 기준처럼 손을 뻗으면 닿는다는 희망을 줘야 요건에 맞춰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입성하려는 상장사 의지를 자극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 언급한 ‘한국거래소스럽다’는 말은 비판이 아니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