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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최근도의 이해] 정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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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뒤늦게 운전면허를 땄다. 처음엔 내 차를 다루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주변 상황에 대처하며 운전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알았다. 유튜브가 도움이 됐다. 다양한 사고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이 많았다.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좋은 교보재가 됐다.

다만 댓글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컨대 합류 차선에선 누가 끼어들든 말든 무조건 직진이 옳다는 댓글이 그랬다.

혹여나 "직진 차량도 양보를 했으면 좋지 않냐"는 사람이 있으면 "합류가 무조건 과실인 게 팩트"라는 식으로 답글이 달렸다.

사고가 나서 누가 다치든 말든 법적으로 자신이 옳은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위화감이 들었다.

물론 법적으로 과실을 따지면 그게 맞다. 그러나 운전의 대원칙은 방어운전이다. 일단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건설적인 대화로 이어지는 걸 팩트라는 단어가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경험이 또 있다.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행기 에티켓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비행기에 탄 어린아이를 조용히 시키려는 부모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였다.

물론 기내에선 조용히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보통 성인과 같은 참을성이 아직 없다. 나는 이에 대한 주위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금방 반박 댓글이 올라왔다. 말문이 턱 막혔다. "누가 아기 낳으랬나. 누칼협?"이라는 댓글이다. 누칼협은 이미 쓰인 지 꽤 된 말이다. 풀어서 말하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뜻이다.

물론 아이를 낳고, 여행에 같이 간 건 부모의 선택이다. 기내를 시끄럽게 한 것도 물론 어린아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부모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걸로 끝난다면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참을성이 부족할 테고 그때마다 기내는 시끄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사회라면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게 행복한 경험일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잘 가르쳐서 에티켓을 갖추는 것만큼이나 주변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이런 얘기들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사회가 됐다. 팩트나 누칼협과 같은 단어로 논의가 일방적으로 끝나버린다.

우리 사회가 정글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 손해를 보는 상황에선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는 이기적인 사회가 됐다. 이기적인 사람들만 가득한 사회는 정글이다. 정글에선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항상 강자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회는 복잡하고 다층화되어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언제든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누구도 운전하면서 앞으로 실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래엔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될 가능성 또한 얼마든지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사회를 만들었다. 정글과 같은 세상이라면 사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글에선 모두가 언제 도태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당신은 언제까지 강자일 것 같은가.

[최근도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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