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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가해자 잊어도 피해자 못 잊어"…日이시바 찌른 리콴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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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부터 일본 이끌 이시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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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강연회에서 이시바 시게루 부부가 참석자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이시바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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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의 반란’이 성공했다. 일본 자민당의 아웃사이더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간사장이 27일 자민당 새 총재에 당선됐다. 자민당 총재 선거 다섯번 도전 끝에 승리했다.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에서 얻어낸 역전승이었다. 이시바 신임 총재는 오는 10월 1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거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뒤를 잇는 102대 총리로 선출된다. 오랜 기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1954~2022) 전 총리의 정적으로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그가 정치자금 스캔들로 벼랑 끝에 놓인 자민당을 이끌게 됐다.

이시바는 1957년 2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고향’은 보수 성향이 강한 돗토리(鳥取)현이다. 건설 관료 출신으로 돗토리현지사, 참의원을 지낸 부친 이시바 지로(石破二朗)의 기반을 물려받았다. 부친의 고향인 돗토리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도쿄로 옮겨 게이오(慶應)고에 입학했고 이어 1979년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는 일본열도 개조론을 주창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다. “다나카 가쿠에이가 없다면 정치가로서 현재 이시바 시게루는 없었다”고 자평할 정도다. 다나카 전 총리와의 인연은 부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부친은 “다나카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말까지 하며 자신보다 10살 아래인 다나카의 오랜 지기로 정치의 길을 함께 했다. 1981년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는 “장례식에 온 3500명의 돗토리 사람들에게 명함을 들고 인사를 돌아라. 이게 선거의 기본”이라며 정계 입문을 권한다. 이시바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당시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정치의 길에 뛰어든다. 1986년 중의원에 당선돼 현재 12선 의원이다.

아베 전 총리와는 오랜 정적 관계다. 아베 정권 시절이던 2007년 자민당이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패하자, 이시바는 ‘아베 퇴진’을 들고 나섰다. 아베 2기 정권(2012~2020년) 때에도 반(反)아베 성향은 이어졌다. 당시 그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도전했지만 아베에 패했고, 2018년 총재선거에서도 아베와 1대 1로 붙었지만 쓴잔을 삼켰다. 그는 ‘자민당 내 야당’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베와 곳곳에서 각을 세웠다. 아베를 둘러싼 후원회인 ‘벚꽃을 보는 모임’이 후원금 스캔들에 휩싸일 때 “철저한 조사”를 요구한 것도 그였다. 아베는 2014년 자신의 정적인 이시바에게 ‘안보법제담당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시바가 이를 거절하며 둘 사이는 완전히 멀어졌고, 이후 줄곧 당내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소장 의원 시절 일찌감치 방위청 부장관과 방위청 장관(현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는 자민당 내에서 손을 꼽는 ‘방위통’이자 어릴 적부터 무기 모형 만들기를 좋아했던 ‘밀리터리 덕후’다. 의원회관 진열장에는 전투기 등 각종 무기의 플라모델이 전시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 그는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서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밀리터리 덕후, 미국 핵공유·아시아판 나토 공약 내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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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9월 아베 신조 총리와 함께 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 나선 이시바 시게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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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안보 역할을 중시하는 이시바의 당선으로 일본의 안보·방위 전략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소신은 확고하다. 그는 2012년엔 자민당 간사장을, 2014년엔 지방창생·국가전략특별구역담당상을 지냈다. 다나카 전 총리의 지방 활성화 정책을 담은 『일본열도개조론』(1972년)을 연상하게 하는 『일본열도창생론』(2017년)을 내기도 했다.

‘방위통’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나긋나긋한 말투에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란 평이다. 자민당 의원 사이에선 ‘공부하는 의원’으로 통한다. 비서가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먹으며 사무실에 틀어박혀 정책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를 좋아한다. 취미는 독서와 요리. 대학 시절 4년간 계속 먹었다고 할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카레를 꼽는다. 일본 술과 와인을 좋아하며, 철도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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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신임 자민당 총재(오른쪽)가 방위청 장관이던 2003년 한국을 방문해 당시 조영길 장관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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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짝사랑하다 결혼에 성공한 이야기는 정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출마를 앞두고 펴낸 저서 『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2024년·쿠라시게 아쓰로 편저)에서 연애담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선거에 아내가 나오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금슬을 자랑한다. 아내 이시바 요시코(石破佳子)는 게이오대 법학부 동급생으로 헌법과 민법 수업을 함께 들었다고 한다. “법학서적을 들고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첫눈에 반했지만 이시바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 아내 마음에 들기 위해 형법 시험 기출문제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은행 입사를 앞두고 있던 이시바는 용기를 내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후 2년 뒤 신문에 실린 이시바 부친의 부고를 본 요시코가 조의 전보를 보냈고 그가 답례 전화를 하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부부는 1983년 결혼했는데, 이후 이시바는 정계 진출에 대해 “아내가 약속 위반이라 말하지 않고 용서해줬다”고 회고한 적 있다.

이시바는 특히 역사 문제와 관련해선 아베 전 총리와 시각을 달리해왔다. 이시바는 『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에서 “일·한 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명확한 리더십으로 극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호기를 일본도 활용해 윤 정권이 한국 내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이 되도록 가능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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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 인식은 한국 입장에서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않는다’는 소제목을 단 부분에선 싱가포르를 방문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일본군이 어떤 지배를 했는지 답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는 일본군이 공포지배를 하고 주민을 중화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로 나눠 수용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일국의 문화와 언어, 제도 및 군대를 잃어버리도록 하는 ‘합병’이 얼마나 상대국 국민의 긍지와 아이덴티티(정체성)에 상처를 주는 것인지, 이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로는 일·한의 진짜 신뢰관계는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또 양국이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토, 위안부, 징용공 등 양측 주장에 큰 차이가 있는 과제는 많고 그 근저에 역사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기술했다. 2019년에는 블로그에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적기도 했다.

이시바의 표현대로 ‘극적으로 개선된’ 한·일 관계 기조를 총리 취임 후 어떻게 이어나갈지 주목된다.



도쿄=김현예·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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