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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수림문학상] 이릉 작가 "삶에서 길 잃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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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수림문학상에 장편소설 '쇼는 없다'로 당선

"일종의 K-판타지 중장년 성장소설이라고 할까요"

연합뉴스

제12회 수림문학상 수상 이릉 작가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제12회 수림문학상에 당선된 이릉 작가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인근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30. job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K-판타지 중장년 성장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삶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12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인 장편소설 '쇼는 없다'는 1990년대를 주름잡은 미국의 스타 프로레슬러들이 이태원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모여 최후의 대회를 치른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40대 중반의 주인공 '나'는 삼촌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매니저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 핼러윈 아침에 어릴 적 우상이었던 미국의 전설적 프로레슬러 '워리어'를 농담처럼 마주친다.

이후 1990년대 초반 WWE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전설의 레슬링 스타들이 이태원으로 속속 모여들고 주인공 역시 이 대회에 얼떨결에 참가한다.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겨준 숙적을 상대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쇼는 없다'로 수림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이릉(46·본명 이지석) 작가는 지난 2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상작을 어떤 장르로 봐야 하느냐는 물음에 'K-판타지 중장년 성장소설'이라는 답을 내놨다.

소설에는 40대 중반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도 어른이 되지 못한 채 과거와 유년의 추억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나온다. 핵심 인물로 등장하는 워리어나 호건 등 왕년의 레슬링 스타들은 그 자체로 옛 영광과 흘러간 과거를 상징하는 캐릭터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레슬링 스타 워리어의 도움으로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고 미래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내용이잖아요. 요즘 10대, 20대만 방황하는 게 아니라 30대, 40대, 그리고 40대 이후에도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중장년의 성장기 통해 남녀노소 모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은 15년간의 언론사 기자 일을 그만두고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매달려 오다 수림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작가의 모습이 짙게 투영된 자전 소설이기도 하다.

"2019년 말 다니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하고 5년 가까이 놀았어요. 자주 길을 잃었고 오래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소설 속에 풀어냈고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반영했지요."

작가는 기자로 일하는 동안에는 주로 축구, 야구 등 스포츠 분야와 가요, 방송 등 연예계를 취재했다.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이를 기사로 재구성했던 경험은 소설을 쓰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연합뉴스

'쇼는 없다'로 수림문학상 당선된 이릉 작가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제12회 수림문학상에 당선된 이릉 작가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인근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30. jobo@yna.co.kr


"기자는 남의 얘기를 일단 잘 들어야 하는 사람이잖습니까. 또 자기가 앞으로 나가면 안 되고, 항상 (뉴스의 중심인물) 뒤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죠. 소설도 어떻게 보면 인물들과 이야기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작가가 깔아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늘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려고 했던 게 소설 쓰기에 도움이 됐습니다."

핼러윈의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게 된 것은 2022년 10월 핼러윈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가 계기가 됐다.

작가는 "이태원 골목길 입구에 국화꽃을 놓고 묵념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신 분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소설을 쓴 것 같다"고 했다.

"고대 올림픽도 종교적인 제의(祭儀)의 의미가 있었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프로 레슬링 경기가 지극히 이태원다운 추모 행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태원은 제가 젊은 시절 아주 자주 다녔던, 저의 일상과 매우 밀접했던 공간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비극이 벌어졌다는 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어요."

이 작품은 시종일관 이어지는 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 패러디로 킬킬거리며 웃게 만들다가도 끝으로 갈수록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처지와 그들의 용감한 도전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며 감동을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내내 일었다.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의 5년을 지내고 이제 막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딘 이 작가는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궁금함을 유발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저는 한 작가의 소설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모든 것을 흡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그 작가의 모든 소설을 다 구해 읽지요. 저도 독자분들이 제 소설 한 편을 읽으시고 다른 소설이 또 궁금해지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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