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로 감시되고 있을까? 실험 삼아 우리는 그날 나왔던 키워드를 외쳤다. “동탄! 청약! 불륜! 불륜!” 웃기게도 하나같이 남의 휴대폰을 타깃으로 삼았다. 짧은 실험 결과 한 명이 당첨되었다. 인스타그램의 추천 피드에 갑자기 청약 관련 게시글이 생겼다. 우리는 ‘진짜네!’ 하며 실컷 웃었고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이동하며 확인해보니 나도 당첨이었다. 지금까지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불륜 관련 게시글이 나의 피드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었다.
웃어넘기긴 했지만 이런 호들갑은 성가시다. 네모난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풍부하다 못해 지나치게 많은 자극에 노출된다. 원한다면 언제든 숏츠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 별 의미 없는 콘텐츠를 보며 그리 즐겁지도 않은 상태로 몇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 혹은 광고에 붙들리기도 한다. 나는 인스타그램 때문에 속눈썹 영양제를 구매한 적이 있다. 제품을 극찬하는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니 하나쯤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물건이 도착했을 즈음에는 마음이 떠났다. 저주가 풀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돈이 아까우니 몇번 사용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렇게 보면 알고리즘은 욕구를 조작한다. 정보를 수집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히 SF의 디스토피아 설정이 떠오른다. 조지 오웰이 쓴 <1984>에서는 ‘빅 브러더’가 텔레스크린으로 하루 종일 사람들을 감시한다. 어디에든 잠들지 않는 눈과 귀가 있다.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수도 없다. 비판적 사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빅 브러더의 체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다.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빅 브러더를 ‘사랑’하게 된다.
나아가 <1984>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이는 율리 체의 <어떤 소송>은 한층 세련된 방법을 쓴다. 체제는 건강이라는 덕목을 내세운다. 하루치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경고를 받는다. 불응을 지속하면 벌금이 부과된다. 건강하지 못함은 범죄다. 체제에 대한 의심은 곧 건강을 의심하는 것이므로 건강하지 못하다. 감시와 통제가 있더라도 체제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을 위해 그들의 건강을 돌보는 중이다. 사람들은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나도 알고리즘에 몸을 맡길 수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보를 넘겨주기도 한다. 어차피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적어도 내가 정말로 관심 있는 내용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매일 주문을 걸듯 소원을 속삭일 수도 있다. 그러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얘 좀 보라며 웃음거리로 삼아도 좋겠다. 웃음은 디스토피아에서도 살아갈 힘을 준다. 언제까지 통할지는 몰라도.
심완선 SF평론가 |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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