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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광화문]철벽같던 '부양·증세 없다' 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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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은 없다"(노무현정부(또는 참여정부)), "증세는 없다"(박근혜정부)

2000년 이후 역대 정부 중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을 거칠지만 함축하는 구호들이다.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도 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겪는 비상시국으로 온갖 대책을 쏟아내야할 시기였기에 일단은 미뤄두자.

#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 김대중정부 당시 내수경기진작(신용카드 남발) 등의 반짝 효과에 이은 깊은 생채기를 경험하면서 정부 출범 때부터 어려움에 직면했다. 때문에 당시 청와대 참모회의를 비롯해 여러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이 뱃사람들이 여신 세이렌의 노래에 홀려 침몰하자 오딧세이가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그 유혹을 뿌리쳤다는 그리스 신화(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아)를 인용(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노무현이 우리들과 나누고 싶었던 9가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관료들과 참모들의 선택은 손발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

부동산정책으로 한정해보면 집값이 치솟는데도 주택 공급 확대는 후순위로 밀렸다. '(건설경기 부양 없이) 강남 불패 신화를 깨겠다'는 선언 속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세금 정책이 '부동산 가격안정 대책'으로 쓰였다. 집권 후반기에 판교와 김포, 양주신도시를 늘리고 위례신도시 개발 계획을 마련하는 등 공급 확대로 선회했지만 집값은 오를대로 오른 뒤였다.

#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로 상징되는 구호로 정권을 거머쥔 만큼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 박빙의 대선구도 속에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을 추가 장착한 만큼 '증세 없는 복지'라는 슬로건까지 덧붙여졌다. 다양한 고민 끝에 지하경제 양성화를 포함해 탈세 등에서 비롯된, 걷을 수 있는 세금은 다 걷어보고자 했다. 지출 개혁과 복지예산 확보를 위한 행정 개혁도 해법으로 꼽혔다.

이런 상황에서 새 원내대표가 된 유승민 의원이 국회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복지를 더 하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국민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고 국민의 선택이 무엇인지 국정에 반영해야한다"고 말한 것은 역린에 해당했다. 유승민 찍어내기로 방향을 정했던 박근혜정부는 결국 2015년 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 대란으로 상징되는 사실상의 꼼수 증세로 민심 악화에 직면해야 했다.

# 최근 정부는 연이은 경제정책 관련 사과와 유감표명을 쏟아내기 바쁘다. 올해 세수 결손이 30조원에 육박할 걸로 예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결손액까지 더하면 2년 새 86조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데 따른 어쩔수 없는 사과다.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기업 영업이익이 줄고, 부동산 거래가 줄면서 관련 세수가 대폭 줄어든 탓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기업 실적 부진이나 자산시장 위축 등이 예견됐던 만큼 예측실패의 과오에 덧붙여 막판까지 혹시나 하는 낙관에 기댔음도 사실이다.

법인세 인하와 부동산세수 감소 등에서 비롯된 구멍을 메울 재원 마련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세입 예산을 보전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른바 건전재정 고수와 '추경은 없다'는 입장이 완강한 것이다. 미래세대 부담을 키우고 대외 신인도를 악화시킨다는 이유다. 대신 기금의 여윳돈을 동원하고,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자영업 위기를 비롯해 내수부진이 뚜렷한 상황에서 정부 재정지출마저 쪼그라들 상황이다. 건전재정이 국가과제일수는 있지만 정부정책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부양이나 증세가 없다는 정책수단을 절대명제처럼 고수했던 정부에 대한 평가와 결말은 알려진바 대로다.

배성민 기자 baesm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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