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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노익장 배우들이 꾸미는 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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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70주년 공연 연습 현장

조선일보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예술원 강당을 연습실 삼아 오는 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할 연극 ‘스페이스 리어’를 연습 중인 예술원 회원 배우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정자, 손숙, 손봉숙(우정 출연), 이호재, 신구.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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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알 수 없는 어제의 반복이고, 내일은 알 수 없는 오늘의 반복이다. 그 나무가 아니면 여기가 어제 온 그곳인지 알 수 없지.” 무대 위 ‘리어왕’ 이호재(83)의 말에 ‘인공지능 광대’ 역을 맡은 신구(88)가 대꾸했다. “폐하, 방금 ‘고도를 기다리며’를 패러디하신 겁니까? 1년 내내 ‘고도’에 출연했더니 비슷한 말만 들려도 ‘고도’ 같네요.” 객석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큭큭큭’ 속웃음을 웃었다.

요즘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예술원 강당에선 연극 연습이 한창이다. 오는 4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예술원(회장 신수정) 70주년 기념식·심포지엄 ‘향연’에서 연극분과 회원 배우들이 공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의 제목은 ‘스페이스 리어’(극작 김명화). 예술원 부회장인 연출가 손진책(76)이 연출을 맡고, 역시 예술원 회원인 신구, 이호재와 박정자(82), 손숙(80)이 함께 무대에 선다. 배우 손봉숙(68)은 ‘우정 출연’.

이번 예술원 향연의 주제는 ‘포스트 휴먼 그리고, 예술’. 여전히 형성 중인 개념이지만, ‘포스트 휴먼’은 대체로 기술 발달로 변화해 과거의 인간과 본질을 달리하는 ‘인간 이후의 인간’을 가리킨다. 학계 논의는 활발하나 아직은 낯선 개념. 그래서 연극 분과 회원들은 코믹하고 발랄한 연극을 택했다. ‘스페이스 리어’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패러디해, 인간이 유발 하라리가 말했던 ‘호모 데우스(신적 인간)’로 진화한 100년 뒤 미래를 약 20분 분량의 웃음 가득한 단막극으로 풀어낸다.

이호재, 박정자, 손숙, 손봉숙은 연극 ‘햄릿’을 최근 마쳤다. 신구 역시 전석 매진 기록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지방 투어를 막 끝낸 참이다. 좀 쉴 만도 한데, 무대에만 서면 에너지가 샘솟는 배우의 본성은 아무도 못 말린다. 힘들지 않으신가 묻자 손숙이 웃는다. “아유, 이 정도는 하나도 안 힘들어. 재밌지 뭐.”

대배우들의 연기는 연습만 봐도 마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바람아 불어라, 내 뺨이 갈기갈기 찢어지도록!”으로 시작하는 ‘리어왕’의 유명한 독백을 할 때, 이호재의 목소리는 여전히 연습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맏딸 ‘거너릴’ 역 박정자가 왕의 호출을 받고 건들건들 춤을 추며 입장할 땐 그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난다. 착한 딸 ‘코딜리아’ 손숙은 대사 하나 손짓 하나 허투루 하는 일 없이 진지하고, 신구는 무대 위에서 ‘고도’ 속 자기 역할을 패러디할 때도 해맑다.

이들의 연기는 오는 4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리는 ‘향연’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연극 분과의 연극 공연뿐 아니라, 문학 분과에선 황동규, 정현종, 유안진, 신달자, 김광규 등 시인들이 자작시를 직접 낭송하고, 미술 분과의 미디어 아트, 음악 분과의 성악 공연, 무용 분야의 창작 무용 공연 등이 이어진다.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에서 예약 신청하면 전석 무료.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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