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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안보 딜레마 처한 레바논, 전쟁 끝내려면 이 방법 뿐” 레바논 학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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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베이루트 대안정책센터’ 연구 책임자 니자르 가넴/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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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국민은 헤즈볼라를 싫어하더라도, 그들이 이스라엘을 막을 유일한 존재기 때문에 맞서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대안정책센터 연구 책임자인 니자르 가넴은 1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레바논에서는 대량 학살(mass assassination)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고등국제문제대학원(SAIS)에서 국제관계와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레바논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잘 알려진 정책 전문가다. 레바논을 ‘위태롭다(fagile)는 말로 부족한 실패한(failed) 국가’라고 묘사한 가넴은 이번 사태로 레바논이라는 국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레바논은 어떤 상황인가.

알다시피 현재 국제법에 위배되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선 호출기 폭발 공격은 레바논 전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았고, 이제는 아파트 등 주거단지에 대한 무작위 공격도 벌어지고 있다. 남부에서는 수십 개의 마을이 융단 폭격을 당했다. 약 백만 명이 남부를 떠나 베이루트와 북부 교외지역으로 피란을 떠난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지상 침공하며 (대규모 폭격을 통해 이 지역을 고립시키는) ‘불의 고리’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레바논 이슬람 무장단체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후 레바논 국내 민심은 어떤가.

나스랄라의 암살은 헤즈볼라의 근본적인 운영에 큰 타격을 입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많은 레바논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고 있다. 물론 나스랄라를 싫어하고 그와 헤즈볼라가 국가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선 엇갈린 감정들이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스랄라를 싫어했더라도 그가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레바논에도 헤즈볼라에 비판적인 이들이 많지만, 이스라엘 때문에 막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

맞다. 헤즈볼라에 대한 레바논 국민들의 의견은 분열돼있다. 많은 이들이 헤즈볼라가 헌법에 따라 운영되지 않고 레바논의 정치 체제를 방해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사라지길 원하는 이들조차도 그들이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해체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이건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레바논인들이 (헤즈볼라에)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게 공포심 때문에 긍정적 감정을 가지는 현상)이다. 헤즈볼라를 싫어하더라도, 그들이 완전히 뿌리 뽑히면 레바논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 80년대 이스라엘이 베이루트까지 진격했을 때처럼 파괴되고 점령당할 것이라고 두려워 하는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헤즈볼라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는 헤즈볼라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는 헤즈볼라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들(헤즈볼라)을 반대하기 어렵게 한다.

-레바논 정부는 지금 뭘 하고 있나.

레바논 정부는 일단 남부 국경지대에 군대를 파견해 헤즈볼라가 유엔 결의안 1701호를 이행하길 원한다. (유엔 결의안 1701호는 2006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종식을 위해 채택된 것으로 교전 지대인 리타니 강 남쪽에서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를 철수시키고, 이 지역에는 레바논군과 유엔평화유지군 만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레바논군은 군사적 억지력이 없는 상태다. 1920년 독립 이후부터 미국이나 프랑스는 레바논이 강력한 군사능력을 유지할 수 없게 했다. 레바논군이 강해지면 이스라엘 북부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헤즈볼라는 남부에 거점을 세웠고,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싸워왔다. 레바논 정부는 (헤즈볼라가 싫더라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는) 안보적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나.

이스라엘은 처음엔 제한적인 공습을 할 것이다. 그들은 헤즈볼라의 방어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한다. 가자지구와 유사한 인명 손실을 통해 헤즈볼라나 레바논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표일 것이다. 추후에는 리타니강 남부를 점령하고 그곳에 정착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쟁이 장기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완전히 해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헤즈볼라는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처럼 게릴라 전술, 지하 땅굴 같은 전술을 활용한다. 이스라엘군처럼 조직화한 군대를 상대하는 데는 오히려 더 강력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으로 헤즈볼라에 일시적으로 이길 수는 있지만, 자신들의 손실도 베트남전 때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국이 (시간이 많이 필요한 표적 공습 대신) 베트남 민간인 마을을 통째로 폭격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으로 레바논 민간인을 위협하고 있다.

-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뭔가.

헤즈볼라를 대신해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억지할 힘을 확립할 수 있는 새로운 안보 체제다. 레바논을 위한 실질적인 방어 전략을 확보하고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안전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황은 다시 통제 불능으로 치달을 것이다. 때문에 국제 사회가 외교적 개입을 통해 유엔 결의안 1701호를 이행하도록 해야한다. 이는 가자 지구 휴전과 관련된 유엔 결의안 채택과 함께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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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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