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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통금’의 망령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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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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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돌아가는 0시처럼/ 사랑아 안녕”



가수 배호의 ‘0시의 이별’은 한동안 금지곡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75년 6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43곡의 금지곡을 발표하면서 이 노래를 포함시켰다. 이별하는 연인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노래가 금지곡이 된 것은 야간 통행금지(통금) 제도 때문이었다. 0시에 이별을 하려면 통금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통금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시행돼왔다. 다수 국가는 분쟁이나 재난에 대비하거나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금을 활용했다. 전근대 사회에서 통금은 주로 치안과 화재 예방을 위해 시행됐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행순조(순찰 규정)에는 ‘2경(밤 10시께) 이후부터 5경(새벽 4시께) 이전까지는 높은 관료부터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니지 못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녀유별사상이 엄격했던 터라, 낮 동안 외출을 삼가야했던 여자들은 남자들이 집으로 들어간 뒤부터 2경 이전까지 야간 외출을 허락받기도 했다. 성별에 따른 통금 시차제가 실시된 것이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미군정은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야간 통금 제도를 시행했다. 1954년 경범죄처벌법 제정으로, 통금 위반자는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졌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귀가를 종용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통금이 시작되는 자정이 되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통금 시간을 못 지킨 시민들은 경찰서에서 대기하다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통금 시간대엔 항공기 착륙도 금지됐다. 국제선 비행기들은 부득이하게 인근 나라로 회항해야 했다. 통금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다음해인, 1982년 1월5일 해제됐다. 국가안보와 치안유지라는 명분 아래 37년이나 통금이 지속된 데는 군부독재 정권이 국민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은 영향이 컸다.



통금의 망령은 이후로도 어른거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맞은 2008년 말,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선 ‘통금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논의가 오갔다. 야권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쏟아내면서 더 이상 진전되진 않았다.



최근 필리핀 가사관리사 무단 이탈 사건에서 때아닌 통금 논란이 소환됐다. 가사관리사들은 ‘밤 10시 통금’을 지켜야 했고 밤 10시에 방에 있는지 문을 두드려 확인하는 사실상의 점호까지 실시됐다고 주장했다. 인권침해를 넘어 근로기준법 98조(기숙사 생활의 보장) 위반 논란까지 불거졌다. 해당 법조항은 ‘사업장 부속 기숙사에 기숙하는 근로자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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