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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미친 자재값·인건비 못버텨…완공 20% 남은 아파트도 공사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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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비 쇼크 ◆

매일경제

2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장위4구역(장위자이레디언트) 재개발 건설 현장에 '공사 중지 예고'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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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으로 발생한 갈등이 공사 중단과 시공계약 해지를 초래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 공급 절벽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분양가와 집값이 상승했고 공사가 속속 중단되면서 건설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내수에도 막대한 타격을 줬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공계약이 해지된 서울 방화6구역 재건축은 애초 2020년 6월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과 조합 간에 합의한 3.3㎡당 공사비가 471만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시공사는 이를 727만4000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조합은 이를 수용하려 했지만 시공사가 재차 공사비 210억원을 추가로 증액해달라고 요구하자 계약을 해지했다.

준공을 목전에 둔 서울 장위4구역 재건축은 공사 진행률이 80%까지 도달했지만 시공사인 GS건설이 공사 중단을 예고한 상태다. 시공사는 설계 업체가 파산해 공사 지속이 어렵고 조합과 공사비 증액 협의도 이뤄지지 않아 중단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서울시까지 분쟁 코디네이터를 파견했지만 양측 간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이 같은 공사비 쇼크는 정부가 계획하는 주택 공급 전반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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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3기 신도시 조성과 1기 신도시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 재건축 규제도 많이 풀었지만 불어나는 공사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주택 공급 부족을 타개하기 어렵다. 착공 물량이 줄고 공사 지연이 빈발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서울의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격 상승 기대감도 낮아지지 않는다. 정부가 부랴부랴 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내놓은 것도 공사비 상승을 민생과 직결된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자재 원가를 떨어뜨려 공사비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건설 공사비의 10%가량을 차지하는 시멘트 가격은 2020년 7월 t당 7만5000원에서 올해 7월까지 4년간 50% 가까이 올랐는데, 시멘트를 만드는 주원료인 유연탄 가격은 2022년 3월 t당 246.02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한 뒤 올해 7월 90.0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사이 시멘트 가격은 2022년 7월 9만2400원에서 올해 7월 11만2000원으로 되레 올랐다는 점이 문제다. 유연탄 가격은 1년 전인 2023년 7월에 이미 90.63달러로 떨어졌지만 그사이 시멘트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

정부가 중국산 시멘트를 비롯해 원자재 수입을 지원하는 등 공사비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공사비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멘트는 생산 직후부터 수분을 흡수해 굳는 특성이 있어 웬만하면 외국산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수입 지원 조치는 국산 시멘트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카드"라고 지적했다.

이런 압박에 시멘트협회는 "올 상반기 시멘트 출하는 12% 감소한 2284만t, 재고는 16% 증가한 126만t에 달하는 등 최근 건설산업 경영 위기는 시멘트업계에도 심각한 타격"이라며 "정부의 협의체 운영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아파트 건설에는 시멘트 외에 골재 등 다른 원료도 많이 쓰인다. 정부는 바다골재 채취 한도를 5년간 5% 내에서 탄력 조정하고 육상의 골재 채취 제한 지역이라도 인근에 채석단지가 있다면 채취를 허용하도록 법령 제정에 나서기로 했다. 건설협회 측은 "골재는 시멘트와 함께 레미콘의 핵심 원재료여서 바다골재 채취 쿼터를 10% 정도로 더 늘리는 등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더 어려운 문제는 높은 인건비와 인력 부족에 따른 공사 기간이다. 정부는 이번에 숙련 기능인 채용 시 우대제도를 도입하고, 관련 비자를 신설해서라도 내국인이 피하는 공사에 숙련 외국인 투입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중 노임 상승폭이 주춤한다곤 하지만 하루 중 근로자의 작업 시간은 종전보다 줄어들었고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으로 사고 예방 교육 시간도 만만찮게 든다"며 "52시간 제도를 지키려면 공사 기간이 늘어나 자연히 공사비도 오른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중장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경직된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개선하는 동시에 현장 타설형 공법 대신 공장에서 골조 등을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이런 공법으로 지은 주택에 대해서는 용적률이나 높이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주택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력 투입 효율성을 높이고 자재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공사 기간도 줄일 수 있어 장기적 대안으로 꼽힌다.

[서진우 기자 / 김유신 기자 /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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